이따금 무슬림(이슬람 신자) 친구를 만났을 때 조심스러운 순간이 있다. “오늘 점심 뭐 먹었냐”고 물어볼 때다. 돼지고기라도 먹은 날엔 대답을 잘해야 한다. 이슬람 문화권에선 돼지고기는 ‘하람(금지된)’ 음식이다. 솔직하게 말해도 뭔 대수겠냐 싶지만 괜한 불편함을 주기 싫어 ‘돼지’란 단어는 쏙 빼고 ‘고기’를 먹었다고만 답한다. 자주 그러다 보니 가까운 무슬림 친구들은 내가 돼지고기를 안 먹는 줄 안다. 한미 정부가 지난 14일 고위급 경제협의회(SED)를 했다. 이태호 2차관, 양동한 양자경제외교국장 등 외교부 간부들이 대거 참석했다. 하지만 같은 회의를 한 두 나라의 결과 설명 자료는 딴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자료엔 한국 관련 내용이 거의 다 포함됐지만, 한국 자료엔 미국이 중점적으로 말한 핵심이 빠져 있었다. 선택적으로 정보를 은폐한 것과 다름없었다. 미 국무부는 자료에서 ‘5G와 클린 네트워크’에 대해 논의했다며 굵은 글씨로 강조했다. “미국은 한국이 자국 안보를 위해 클린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서 상세히 관련 설명을 했다. 화웨이 같은 중국산 통신 부품을 쓰지 않는 ‘모범 사례’로 KT·SK텔레콤 등을 언급했다. 화웨이 부품을 사용하는 LG유플러스를 겨냥한 셈이다. 회의 주 메뉴는 ‘대중(對中) 협력’이었다.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과 마크 멘지스 미국 에너지 부장관이 16일 '원자력 고위급위원회' 화상회의를 열고 있다./외교부제공 하지만 200자 원고지 10장에 이르는 외교부 자료엔 ‘5G’ ‘클린 네트워크’ ‘KT’ 같은 단어는 없었다. 코로나 협력, 한미 파트너십 등 두루뭉술한 용어로 가득했다. 비유로 풀자면 미국은 “바비큐와 불고기를 맛있게 먹었고 앞으로 건강에 해로울지도 모르니 이런 음식은 좀 삼가자”고 대화 내용을 밝혔는데, 한국은 “육류 위주 식단이 차려졌다”고만 알린 셈이다.
이런 ‘동상이몽(同床異夢)’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나라마다 강조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틀리는 말은 아니다. 기대하는 음식과 그 맛 평가는 서로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그 식탁에 무슨 음식이 올랐고, 메인 요리가 뭐였는지, 파트너가 어떤 음식을 선호했고, 싫어한 메뉴는 뭐였는지 '있는 그대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 외교부는 이 회의에서 거론된 주요 정보를 숨겼다. 사실을 선별해 마치 이게 전부였다고 국민에게 알렸다. 외교부 자료만 봤다면 미국이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클린 네트워크 참여’를 요청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미국이 “왜 이건 알리지 않느냐”고 시위하듯 우리 외교부 발표 사흘 뒤 ‘진짜 회의 결과’를 공개했기에 ‘정보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외교부 말만 믿었다가 미국 기류를 잘못 해석해 대중·대미 투자에서 큰 낭패를 볼 뻔했던 기업이나 투자가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발 밑반찬 한두 가지는 숨기더라도 ‘메인 요리’만큼은 국민에게 사실대로 고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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