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최훈 칼럼]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출처: 중앙일보]

bindol 2020. 10. 27. 05:52

최훈 편집인

 

“가족의 걱정 어린 눈빛과 손짓.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라며 멀찍이 떨어진 경비원들. 스스로 혼자 올라탄 앰뷸런스. 공동체로부터 외로이 격리되는 어제의 내가 아닌 나.” 며칠 전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지인의 문자다. “구석구석 하나씩 앉은 비행기. 방호복 입은 과학자 같은 승무원이 실험실에서 갖다 준 듯한 기내식. 인적 없으니 원칙대로 꼼꼼히 물어보는 무표정의 공항 직원. 45년 단골 호텔의 도어맨도 사라지고. 로비와 단골 레스토랑은 폐쇄. 텅 빈 룸 냉장고. 찬바람만 스산한 유령의 다운타운. 공상과학 영화에 들어온 듯. 서울은 드림랜드 수준이네요.” 급한 용무로 지난주 미국 서부 대도시를 찾은 지인의 전언.

재택 근무, 정신적 고통 치유 등
삶 전반의 지혜가 절실한 팬데믹
상황 인정하되 유연 대응 회복과
함께 나아가자 격려·믿음이 최선

코로나 팬데믹은 모든 삶의 영역에 악영향을 끼치며 일상의 행복들을 잊게 한다. 건강뿐 아니라 경제 상황과 삶의 질 악화, 대응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증폭 등 삼중 복합의 상처를 낳고 있다. ‘네버 엔딩 스토리’의 불확실성이야 가장 큰 고통이다. 하지만 모든 도전에 응전을 멈추지 않은 게 인간의 역사. 미증유의 재앙에서도 유연하게 적응하며(adaptability),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노력 역시 활발하다. 피해가 심각한 미국, 유럽 등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해 온 슬기로운 지혜들을 공유해 본다(이하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FT 매거진 등의 최근 코로나 특집기사, 칼럼 등 발췌 인용).

# 생산적 재택=미국의 재택은 사무실 근무의 2배, 유럽은 40%가 재택 중이다. 영국 기업들의 4분의 3이 팬데믹 이후에도 이를 늘려 나갈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재택의 생산성. 일과 집의 산만한 환경의 공간 분리가 정답. 컴퓨터 놓인 데스크 주변이 깔끔해야 뇌의 집중력도 올라간다. 식탁 위에서라도 어느 정도는 정돈하라는 게 공통된 조언. 매일 가족과 자신의 재택 업무 일정에 대해 공유, 도움을 구하라. 일과 무관한 앱이나 알람은 최소화! 40여 분의 집중, 5분 휴식 뒤 조금씩 업무 집중시간을 늘려나가 보라고 한다. 재택 중의 근육통들도 많다니 돈 좀 들더라도 적절한 업무용 가구는 장만하는 게 이득. 회사에서도 줌의 배경을 줄이고 온과 오프의 시간 블록을 분리, ‘always on’의 스트레스를 주진 않는 게 디지털 에티켓이다.

# 마음의 평정=미 존스홉킨스대의 6월 조사로는 불안감, 우울증 징후가 전년에 비해 3배, 4배 이상 폭증. “세상은 원래 불확실하고 이런 재앙 역시 생길 수 있다”는 ‘마음의 적응력’이 중요하다. 구글과 미 해군 네이비실의 심리치료 기관인 FRC의 지침은 “하루에 (무언가에) 감사 3~5분, 명상이나 횡경막 심호흡 11~22분, 스트레칭 등 간단한 운동 20~40분을 실천하라”고 장려한다. 기상 후 30분은 폰을 보지 말라고 한다. 사회적(social) 격리가 아니라 신체적(physical) 격리가 맞다. SNS나 전화로 안부를 묻고 격려해 주자. 당신의 고통에 늘 함께하고 있다고….

 

# 가정의 평화=자녀들이 훨씬 혼란스럽다.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면 이 세대들은 오히려 ‘낙심하는 법’을 배우고 정신적 면역의 자산을 지닐 수 있다. 부모가 ‘선생님’ 노릇까지 마음먹는 순간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커진다. “일어나라, 밥 먹어라, 학교 과제는 해야지, 마스크 끼고 산책이나 하고 와”정도의 질서가 최선. 함께 요리한다든가 하는 공유의 경험에 “무언가 얻는 것도 있구나”라는 치유의 힘이 싹튼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서구 부자들의 이혼이 급증 중이다. 미국 34%, 영국 41%, 이탈리아 30%의 이혼 상담이 늘었다. 국외 여행 중단이 큰 스트레스. 오랜 불륜 커플 역시 여행이 봉쇄되자 과감한 행각을 벌이다 발각되는 사례가 원인(FT Wealth, 10월호)이란 분석도 나온다. 부부끼리도 자기 확신의 소리를 줄이며, 늘 부드러운 톤의 공감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조언은 공통적.

# 팬데믹 시대 리더십=요체는 3단계. “위기를 명확히 인정·수용하라” “유연하게 대응해 이를 회복하자” “함께 다시 앞으로 나아가자”다. 격리의 시대이니 생존을 위한 조직의 비전과 미션을 과감히 재정립하고 명확히 공유하라는 조언이다. 보이지 않기에 그들을 신뢰·존중하며 함께할 것이란 믿음을 주는 게 최선. 레이건 전 대통령이 그래서 요즘 재소환된다. 챌린저호 폭발로 숨진 우주비행사와 유족, 국민을 위로한 그의 추도사는 바로 위기 극복 리더십의 교과서였다.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고통스러운 일은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이 역시 기회를 거머쥐고 인류의 지평을 넓혀 가는 과정입니다. 미래는 소심한 자가 아닌 용감한 이에게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를 향한 탐험을 계속할 것입니다. … 결코 그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상의 굴레(the surly bonds of earth)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얼굴을 만지던(touch the face of God)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최훈 편집인

[출처: 중앙일보] [최훈 칼럼]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