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서를 다른 선관위원 후보자 답변을 그대로 베껴 제출했다. 의원들의 질문 320건 가운데 개인 문제 등을 제외한 선관위 정책 관련 질문 63건에 대해 노 후보자는 지난달 청문회를 치른 조성대 선관위원 후보자가 제출한 답변과 똑같은 답을 했다. 노 후보자는 ‘선관위 중립성’에 대한 견해를 묻자 “회의체 방식으로 의사 결정을 하고 있으므로 의사 결정 과정도 독립적, 중립적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조 후보자의 답과 똑같다. 선관위의 생명과도 같은 중립성에 대해 선관위원장이 되겠다는 사람이 남의 생각을 그대로 베껴 얘기한 것이다. 선관위원장이 아니라 선관위원 자격도 없다. 위성 정당 출현, 교사 정치 참여, 선거 연령 하향 등 선관위 핵심 정책에 대해서도 노 후보자는 띄어쓰기와 토씨까지 같은 답을 했다. 아예 컴퓨터에서 복사해 붙여넣어 제출한 것이다. 노 후보자는 ‘서면 답변을 직접 작성했느냐’는 추궁에 “많은 서면 질의를 짧은 시간에 혼자 다 답변하기는 힘들었다”고 베껴 낸 사실을 인정했다. 학생들도 과제물을 표절하면 제재를 받는다. 그런데 대한민국 5부 요인(要人) 헌법기관장이 될 사람이 남의 답변을 베껴 국회에 제출했다. 선관위원이 아니라 공인 자격이 아예 없다. 노 후보자가 과거 주심을 맡았던 대법원 판결이 하급심에서 뒤집히는 일이 있었다. 법 조문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재판해 망신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문책을 받지 않았고 이번에 선관위원장까지 된다. 노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엉터리 판결을 지적하자 “업무 처리의 소홀함이 있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면서도 “잘못된 판결은 아니었다”고 했다. 엉터리 판결을 하고서도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노 후보자에 대해 민주당은 선관위원장으로 ‘적격’이라고 청문 보고서를 채택했다. 노 후보자는 요식 절차를 거쳐 조만간 선관위원장이 될 것이다. 내년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2024년 총선까지 선거 심판을 맡게 된다. 민주당은 노 후보자가 더 큰 하자가 있어도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노 후보자는 법원 내 좌파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코드’가 맞는 선관위원장 후보자이기 때문이다. 여당은 선거 심판진에 어떻게든 자기 편을 한 명이라도 더 심겠다는 생각밖에는 없다. 노 후보자 본인도 뭘 써내든, 어떤 답을 하든 여당이 장악한 국회에서 청문회는 통과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나라의 기둥과 같은 공직이 이런 식으로 임명되고 있다. 정권은 선관위 상임위원에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을 임명했다. 그 효과는 지난 총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선관위는 야당의 ‘민생 파탄’ 구호를 불허하고 여당의 '친일 청산’ ‘적폐 청산’은 허용했다. 야당이 요구했던 비례당 명칭을 못 쓰도록 해 불공정 논란을 일으켰다. 얼마 전엔 여당 후보 당선에 “만세 만만세”라고 외친 인물을 선관위원에 추가로 임명했다. 정치적 공정과 중립이 생명인 선관위가 이렇게 중립성을 의심받는 편향 인사들로 채워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엔 국회의 질문에 남 생각을 베껴 답을 낸 사람이 선관위원장이 된다. 이래도 ‘나라’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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