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이건희 회장이 소환한 화두
2000년대 초반 독일 하노버 출장길에 유럽 최대 전자양판점 ‘메디아마흐트(MediaMarkt)’ 쇼윈도에 놓인 삼성전자 LCD(액정 화면) TV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한국 기업 전자제품이 유럽에서 ‘눈에 확 띄는’ 장소에 놓여 있는 걸 본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동행했던 최지성 당시 삼성전자 부사장이 “우리 제품이 이렇게 주목받고 있다”면서 의기양양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기억의 백미는 그다음이다. 앞뒤로 놓인 소니와 삼성 TV를 요모조모 비교해 보고 있자니 점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삼성 TV 첨 보셨죠. 요즘 완전 뜨고 있는 ‘일본 브랜드(eine japanische Marke)’예요. 전자제품은 역시 일본이 최고죠.” 삼성은 꽤 오랫동안 유럽에서 일본 브랜드로 오인받았다. 제품 뒤편에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분명히 쓰여 있는데도 그들 눈에는 당연하다는 듯 ‘메이드 인 재팬’으로 인식됐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도 상당수 유럽인이 한국을 베트남 옆의 개발도상국쯤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시내 유명 백화점 맨 앞줄에 놓인 삼성 TV를 어찌 한국 제품이라고 생각했겠는가. 삼성의 품질제일주의, 세계 1류를 지향한 집념이 상당한 결실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험이었다. 이후 삼성의 진격 앞에 미국과 일본, 유럽 유수 전자 회사들이 줄줄이 나가 떨어졌다. 한 국가 이미지는 결국 대표 기업이나 유명인들 이미지가 쌓이면서 만들어진다. 한국이 세계적인 기술·문화 강국으로서 위상을 구축해가는 과정은 삼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 등정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은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에서 시작했다는 점도 부인하긴 어렵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회장은 한국 사회가 과거로부터 벗어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했다. 삼성이라는 기업을 통해 더 높은 가치를 달성하면 한국 사회도 이와 함께 변화해가리라 믿었던 것이다.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란 발언은 사실 그런 열망을 담고 있었다.
이 회장이 삼성을 ‘세계 1류’로 만들려 애쓰고, 다른 한국 기업들도 삼성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면서 전반적인 한국 기업 경쟁력이 동반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기업만이 아니다. 어쩌면 한국 사회 전체가 이건희라는 인물이 추구한 ‘1류를 향한 끝없는 집착'에 답하며 조금씩 전진했는지 모른다. 이 회장은 28일 자신이 애착을 가졌던 경기도 화성⋅기흥 반도체 사업장에서 임직원들의 마지막 인사를 받은 뒤 선영에 묻혔다. 안타깝게도 그는 생전에 1류가 된 한국 사회를 보지 못했다. 이 회장이 이뤄낸 성취에 대해 감탄하건 질시하건, 궁극적으론 그의 유산을 넘어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도전하는 한국 사회의 동력이 멈추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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