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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불출마 당헌 만든 文 또 뒤로 숨어, 부끄러움은 아는가

bindol 2020. 11. 3. 08:15

조선일보

입력 2020.11.03 03:26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이 어제 “전 당원 투표 실시 결과 당원들의 86%가 공천에 찬성했다”며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를 공천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압도적 찬성률은 보궐 선거에 공천해야 한다는 전 당원 의지”라고 했다. 투표에 전체 3분의 1도 안 되는 26% 당원만 참여했는데 이걸 두고 ‘압도적 찬성’이라고 한다. 옳지 않은 일을 하면서 당원을 앞세워 이용하는 것이다.

민주당 당헌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이는 정당이 국민에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민주당 소속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범죄 때문에 치러지는 것이다. 당헌대로면 민주당은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낼 수 없다. 하지만 하나 마나 한 당원 투표를 빌미로 당헌을 고쳐 후보를 내기로 한 것이다.

'잘못이 있으면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인 2015년 당 혁신위원회를 통해 만들어 정치 개혁이라며 국민 앞에 내놓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정치 발전의 출발점”이라고 자랑했다. “혁신안이 부결되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도 했다. ‘보궐선거 무공천’ 약속은 문 대통령이 대표직까지 걸면서 관철시킨 당헌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당헌을 처음 적용할 상황이 닥치자 민주당은 없던 일로 하겠다고 한다. ‘보궐선거 무공천’ 약속이 정치 발전의 출발점이라고 했으니 그 번복은 무엇의 출발점인가.

 

 

문 대통령은 당헌을 만든 그해 경남 고성군수 재선거 유세에서 “새누리당 전임 군수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돼 치르는 선거이니 새누리당이 책임져야 한다.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십수억이 넘는 재선거 예산은 고성군민이 다 부담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책임져야 한다”고도 했다. 민주당 시장들의 성폭력으로 치러지는 선거이니 민주당이 책임져야 하지 않나. 여기에 들어가는 838억원의 국민 세금도 민주당이 책임져야 한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정치 개혁이라며 했던 대국민 약속을 민주당이 뒤집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무 말도 않고 있다. 자신이 대표직까지 걸어가며 만든 당헌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데도 입장 표명이 없다. 청와대 측은 “당에서 하는 것에 대해 청와대가 입장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거짓말이다. 문 대통령의 동의, 지지 없이 민주당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엄정하라”고 했지만 정작 청와대의 불법 비리를 수사한 검사들은 모조리 좌천됐다. “언론 장악 없다”고 했지만 공영 방송 등 대다수 언론이 정권의 응원단이 돼 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했지만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에 대해서 침묵했다. 문 대통령 친구를 울산시장 만들기 위해 청와대가 나서 선거 공작을 벌였는데 정작 문 대통령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유리할 때만 개혁과 정의, 공정을 외치고 불리해지면 반대로 행동하면서 자신은 국민 앞에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