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1.각하(閣下)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4. 12. 10. 20:54
올해 가을의 경복궁 근정전 모습. 이런 '전'이라는 건물 밑에서 나를 낮춰 임금을 부르던 존칭이 '전하'다.
신분과 계급을 아주 엄격하게 따졌던 옛 동양사회에서는 지체가 높은 대상을 부르는 존칭(尊稱)이 퍽 발달했다. 치밀하게 매겨 놓은 ‘위계(位階)’에 관한 의식 때문에 높은 신분의 대상에게는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일이 꺼려졌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나를 낮춤으로써 상대를 높이는 방식의 존칭이 있다. 중국에서는 흔히 이를 因卑達尊(인비달존)이라고 한다. 낮춤(卑)으로써(因) 존경(尊)을 표현한다(達)는 식의 엮음이다. 우리가 가장 잘 알 수 있는 그런 방식의 존칭이 각하(閣下)다.
여기서 閣(각)은 높은 지위의 벼슬아치가 있는 관공서를 가리킨다. 그 아래에 있는 ‘나’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상대를 높이는 말이 곧 각하(閣下)다. 이는 현대로 접어든 한국사회에서도 많이 쓰인 존칭이다. 군대의 상관, 직장의 상사를 부를 때 널리 쓰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주로 대통령에 대한 존칭으로 많이 사용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식의 말을 들으면서 생활한 사람들이 많다.
족하(足下)라는 말이 이런 방식의 존칭으로는 사실 가장 오랜 단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BC403~BC221년)에 등장한 기록이 있으니 그렇다. 군주(君主)는 높은 자리에 앉는다. 꼭 그렇지는 않을지 몰라도, 높은 곳에 앉은 군주의 발(足)은 그 아래에 서있는 신하들의 머리 높이 정도였을 테다. 그래서 그 발아래에 있는 ‘나’의 위치로 상대인 군주를 높여 부른 말이 족하(足下)다.
황제(皇帝)에게는 폐하(陛下)라는 단어를 흔히 사용했다. 진시황 이후 명(明)과 청(淸) 등 중국 통일왕조에서 황제를 호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표현이었다. 陛(폐)는 황제가 머무는 공간 아래에 있는 섬돌, 즉 계단을 지칭한다. 폐하(陛下)는 따라서 그 밑에 있는 사람의 신분으로 섬돌 위의 황제를 호칭하는 단어다.
황제보다는 아래에 있는 황태자(皇太子), 제후(諸侯), 황태후(皇太后) 등에게는 전하(殿下)라는 말을 썼다. 황태자나 제후, 황태후 등이 머무는 곳인 殿(전)이라는 큰 건물 밑의 ‘나’로써 상대를 높이는 방식이다. 우리 사극(史劇)에서 임금을 부를 때 많이 쓴다.
휘하(麾下), 절하(節下)는 군대 용어다. 麾(휘)는 전쟁에 나선 장수(將帥)의 깃발, 節(절)은 그런 장수가 사용하는 권한의 상징인 부절(符節)을 가리킨다. 따라서 휘하(麾下)와 절하(節下)는 원래 그 밑의 장졸들이 제 장수를 부를 때 썼던 존칭이다.
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회동할 때 ‘각하’라는 옛 존칭을 잇달아 사용해 화제다. 예전의 봉건왕조 사회라면 이런 호칭이 문제로 떠오를 리 없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색채를 벗기 위해 이 말 쓰지 말자고 한 지가 오래다. 그럼에도 대통령 앞에서 이 말을 쓴 사람의 저의가 뭔지 모르겠다. 옛 권위주의 시절이 그리웠는지는 몰라도, 신분에 이어 제 의식마저 섬돌이나 대상의 발아래에 내팽개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곧 날아오를 비행기를 멈춰 램프로 되돌린 뒤 기내 사무장을 내리도록 한 재벌 오너 집안의 사람이 사실은 더 문제다. 남들에게 ‘전하’ ‘족하’, 심지어는 ‘폐하’라는 존칭을 듣고 싶은 것일까. 남을 내 발 아래에 두고자 하는 마음이 읽힌다.
“교만한 마음은 손해를 부르고, 겸손한 자세는 도움을 얻는다(滿招損, 謙受益)”고 했다. 세상의 이치, 즉 천도(天道)가 그렇다는 얘기다. 남을 헤아리는 마음이 없어 스스로 자만과 교만에 머물면 닥치는 것은 재앙이다. 이 시대의 ‘있는 이’들 잘 새겨야 할 말이다.
<한자 풀이>
閣 (집 각): 집. 문설주. 마을. 관서. 궁전. 내각. 다락집. 층집. 복도. 찬장.
陛 (대궐 섬돌 폐): 대궐 섬돌. 층계. 계단. 계급. 품계, 벼슬 차례, 벼슬의 등급. 시립하다.
殿 (전각 전): 전각, 궁궐. 큰 집. 절. 전하. 후군(後軍). 아래 등급. 진무하다, 진압하여 안정케 하다. 평정하다. 신음하다.
麾 (기 휘): 기. 대장기. 가리키다. 부르다.
符 (부호 부): 부호, 기호. 증거, 증표. 부적. 예언서. 도장. 부절(符節: 돌이나 대나무·옥 따위로 만들어 신표로 삼던 물건). 조짐.
招 (부를 초, 지적할 교): 부르다, 손짓하다. 묶다, 결박하다. 얽어매다, 속박하다. 구하다. 나타내다, 밝히다. 흔들리다. 움직이다. 과녁. 별 이름. 지적하다(교).
<중국어&성어>
满(滿)招损(損), 谦(謙)受益 mǎn zhāo sǔn,qiān shòu yì: 본문의 풀이와 같다. 滿은 가득 찬 물 등을 표현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만과 교만의 뜻을 얻었다.
阁(閣)下 gé xià: 우리의 ‘각하’와 맥락은 같지만, 과거 중국사회에서 2인칭 존칭으로 사용한 글자다. 현대 중국어에 2인칭 존칭인 您nín이 등장하면서 사용빈도가 크게 줄었다.
足下 zú xià: 우리말 ‘족하’와 같다. 윗사람, 또는 동년배끼리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陛下 bì xià: 왕조 시절 황제를 일컫던 호칭, ‘폐하’.
麾下 huī xià: 우리말 ‘휘하’와 같다. 원래는 장수에 대한 존칭에서 출발해 지금은 그 장수 밑의 부하를 일컫는 말로 발전했다.
출처: https://hanjoong.tistory.com/entry/한자-그물로-중국어-잡기-81각하閣下?category=662101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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