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20.천고마비(天高馬肥)

bindol 2020. 12. 24. 05:30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20.천고마비(天高馬肥)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5. 9. 16. 16:18

 


지난 9월15일 서울 남산타워를 중심으로 찍은 가을 하늘이다.
부쩍 높아진 하늘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 완연한 가을이다.
'천고마비'라는 성어의 다른 속뜻, 그에 견줘 북한의 도발을 생각해봤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어다. 하늘(天)은 높아지고(高), 말(馬)은 살찐다(肥)의 엮음이다. 다음을 이루는 성어는 등화가친(燈火可親)이다. 등불(燈火)을 가까이(親) 할 만 하다(可)의 구성이다. 그러니 어쩔까. 좋아진 날씨에 책을 열심히 읽으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는 한반도와 일본의 버전이다. 원래의 이 성어는 살벌한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을이 오면 기온이 크게 내려간다. 특히 전쟁이 늘 불붙었던 성어의 원래 출발지, 중국의 경우에는 심각했다. 가장 추운 곳인 북쪽 경계 지역의 하천이 얼어붙기 때문이다.

강이 얼어붙으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곳으로 드넓은 초원에서 여름 내내 왕성하게 자란 풀을 뜯어 먹어 튼튼하게 살이 찐 말이 넘어온다. 그냥 말만 넘어오면 횡재(橫財)가 아닐 수 없다. 그 위에 누군가를 태우고 넘어오는 까닭에 큰 문제다. 중국 버전의 성어 표현은 秋高馬肥(추고마비)다.

그 성어의 원전은 북송(北宋) 때 정식 등장했다. 李綱(이강)이라는 대신이 황제에게 “가을 하늘 높아져 말이 살을 찌웠으니 오랑캐가 곧 다시 올 것”이라며 전쟁에 대비하라고 촉구한 발언에서 나왔다. 그에 앞서 당(唐)나라 시에서도 “가을 하늘 높아져 변방의 말이 살을 찌웠다(秋高塞馬肥)”는 표현이 등장한다.

따라서 원래의 이 성어는 중국과 북방 유목민족 사이의 전쟁을 가리켰다. 수확의 기쁨과 함께 전쟁의 걱정에 젖어야 했으니 북부 중국인에게 가을은 꼭 즐겁지만은 않았다. 오죽하면 가을에 외적의 침입을 막는다고 해서 防秋(방추)라는 단어까지 만들어 냈을까.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 좋은 면이 있으면 그 반대에 들어서는 그늘도 대개 있는 법이다. 그래서 늘 주변의 모든 상황을 자세히 살펴 곧 닥칠 상황에 착실하게 대비해야 좋다. 그런 맥락에서 가을과 함께 떠올려 보면 괜찮은 단어가 추호(秋毫)다.

가을이 오면 털갈이를 하는 게 일반 동물의 특성이다. 번식을 끝낸 조류의 경우 어두운 색깔의 깃털이 새로 돋아난다. 동물들의 가을 털갈이에서 새로 돋는 털은 유난히 작고 가늘다고 한다. 그런 가을 털갈이에서 새로 나오는 털을 추호(秋毫)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단어는 ‘아주 조그만 것’ ‘작고 가는 것’ 등의 의미를 다시 얻었다. “추호의 틈새도 허락하지 않는다” 식의 표현은 우리 귀에 익다. 명찰추호(明察秋毫)라는 말이 있다. 눈 밝기(明)가 가을 털갈이 짐승의 작고 미세한 털(秋毫)을 살필 수 있다(察)는 엮음이다.

사물과 상황을 자세히 살피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시비를 걸고 나오는 내용도 있다. 미세한 부분만 살피면 곤란하다는 문제 제기다. 맹자(孟子)의 경우가 그렇다. 가을 털은 살피면서도 수레에 실린 큰 덩치의 땔감은 정작 눈으로 보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했다. 원문을 적자면 ‘明察秋毫之末, 而不見輿薪(명찰추호지말, 이불견여신)’이다.

크고 작게 모두 잘 살펴야 좋다. 큰 흐름을 놓친 채 디테일만을 건져도 문제고, 하늘만 쳐다보며 걷다가 발을 구덩이에 들여도 문제다. 그 적절성을 이루기가 좀처럼 쉽지는 않다. 크고 작은 모든 변수에 늘 대비하면서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이 가을에 북한이 로켓 발사를 서두르고 있다. 영변의 핵 시설도 다시 가동했다. 천고마비(天高馬肥)를 중국식 버전인 秋高馬肥(추고마비)로 고쳐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가을 터럭까지 살피는 세밀한 눈길, 동북아 전체의 구도를 살펴 통일까지 내다보는 전략적 시야를 모두 놓치지 않는 일이다.

 

<한자 풀이>

肥 (살찔 비): 살찌다. 기름지다. 살지게 하다. 비옥하게 하다. 넉넉해지다. 두텁게 하다. 투박하다. 얇게 하다. 헐뜯다. 거름, 비료. 지방, 기름기. 살진 말. 살진 고기.

毫 (터럭 호): 터럭, 털. 가는 털, 잔 털. 붓. 붓 끝. 호(척도 또는 분량의 단위). 조금. 가늘다.

塞 (변방 새, 막힐 색): 변방. 요새. 보루. 주사위. 성의 하나. 보답하다, 굿을 하다. 요새를 쌓다. 사이가 뜨다. 막히다 (색). 막다 (색). 차다, 채우다 (색).

輿 (수레 여, 명예 예): 수레. 가마. 타거나 물건을 싣는 수레 윗부분. 수레를 모는 하인. 노비. 땅, 대지. 수레를 만드는 사람. 기본. 정기(旌旗).

薪 (섶 신): 섶, 땔감용 나무. 잡초, 풀. 봉급. 땔감으로 만들다. 나무를 하다.

 

<중국어&성어>

秋高马(馬)肥 qiū gāo mǎ féi: 흔히 쓰는 성어는 아니다. 그러나 가을의 도래, 이어 벌어질 전쟁의 조짐을 알리는 성어다.

秋高气(氣)爽 qiū gāo qì shuǎng: 가을의 높은 하늘, 선선해져 상쾌한 날씨를 뜻하는 성어다. 일반적으로 선선해져 좋은 가을의 날씨를 이야기할 때 많이 사용한다.

一叶(葉)知秋 yī yè zhī qiū: 떨어지는 잎사귀 하나에서 가을이 왔음을 안다는 뜻. 아주 희미한 조짐으로 커다란 변화가 도래했음을 안다는 게 속뜻이다. 자주 쓴다.

春花秋月 chūn huā qiū yuè: 봄의 꽃, 가을의 달. 세월의 흐름을 가리키기도 하면서 봄과 가을의 아름다운 경치를 말할 때도 쓴다.

秋风(風)落叶(葉) qiū fēng luò yè: 우리가 자주 쓰는 ‘추풍낙엽’과 뜻이 같다.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바람 등이 불어 한꺼번에 사라지는 그 무엇을 일컬을 때도 쓴다.



출처: https://hanjoong.tistory.com/entry/한자-그물로-중국어-잡기-118천고마비天高馬肥?category=662101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