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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구라'의 어원

bindol 2021. 1. 18. 06:14

신견식 번역가

 

세상의 기원이 궁금하듯 말의 기원도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옆집에 놀러 갔다가 책장에 꽂힌 영어 사전에서 어원 설명을 본 뒤로 어원에 큰 흥미를 느꼈다. 지금 하는 일은 번역이라서 어원 탐구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말의 뿌리를 캐다 보면 번역할 때 뜻밖의 영감을 얻기도 한다.

어원 탐구는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다. 깊게 공부하지 않으면 어원학적·언어학적 뒷받침이 없는 '아무말대잔치'에 빠지기 쉽다. 이런저런 민간 어원이나 사이비 어원도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 왜들 끊임없이 엉터리 어원을 만들어내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역사적 관계가 밀접해 어원과 관련한 낭설도 많이 돌아다닌다. 이를테면 '사무라이'가 '싸울아비'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고대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말이 없지는 않지만 사무라이는 그냥 일본어일 뿐이다. 반대로 '에누리'나 '야코'처럼 한국어인데 언뜻 일본어처럼 들려 오해받는 낱말도 있다.

 

이야기나 거짓말을 뜻하는 '구라'도 일본어라 오해받는 한국어다. 구라라는 말을 볼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인도네시아어로 거북이를 뜻하는 '쿠라쿠라(kura-kura)'다. 구라와 쿠라쿠라 둘 사이 혹시 모종의 관계가 없을까 상상을 확장해 본다. 동남아에서 구로시오(黑潮)해류를 타고 한반도로 올라온 동식물이 많은데 거북이도 그중 하나다. 별주부전에서 거북이는 토끼에게 구라를 쳐서 용궁으로 데려가지만 토끼는 구라를 쳐서 다시 빠져나온다. 구라 치고 구라에 당한 거북이. 구라가 거북이를 뜻하는 인도네시아어 쿠라쿠라에서 온 건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펴고 언어의 바다를 헤엄쳐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어원을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건 물론 학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구라 풀며 언어를 즐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별별 생각과 이야기가 더해질 때 우리말의 세계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