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라고 하는 단어는 점잖지 못한 비속어지만 어떤 경우에는 긍정적인 의미로 쓸 때도 있다. 때로는 고상한 맥락에서 통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유홍준(72) 선생에게 들었다. 이건 필자에게 지적 자극이 되었다. 재작년이던가. 부산에서 출발하여 대만까지 갔다 오는 그린보트를 1주일 동안 유 선생과 같이 탄 적이 있다. 배를 타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상황에서는 육지로 나갈 수도 없고, 전화도 오지 않기 때문에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다. 배의 갑판에 설치한 의자에 앉아 동중국해를 바라보면서 한국 구라의 계보와 전통에 관한 대담을 하게 되었다. “구라를 그리 차원 높게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히스토리보다 높은 단계로 보죠. 역사는 한번 읽는다고 해서 완전히 머리에 들어오지 않잖아요. 노력을 해서 외워야 하는 부담이 있죠. 그런데 구라는 이야기입니다. 한번 들으면 머릿속에 쏙 남아요. 자연스럽게 기억이 되죠. 그래서 역사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경지가 구라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라는 것이죠” 역사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것이 구라다! 역사는 습기를 제거해 버린 건어물이라고 한다면, 구라는 등이 푸른 싱싱한 제주도 방어에 비유할 수 있다. 건어물은 씹으려면 딱딱하고 방어 회는 씹는 부담이 작고 입에서 녹는다. 구라(이야기)의 특징은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이야기에 내가 참여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 이야기가 나의 삶에 들어와서 에너지로 전환될 수도 있고, 나의 경험이 그 이야기에 보태져서 또 다른 이야기로 분화될 수도 있다. 물론 역사도 그럴 수는 있지만 그 형식에서 구라가 훨씬 흡수율이 높다.
구라의 단계로 전환되려면 자기의 인생 체험과 체취가 녹아 있어야 한다. 인생 체취가 결여되어 있으면 전달력이 약하다. 책만 많이 읽는다고 해서 구라꾼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책상물림이 된다. 거기에 인생이 묻어 있어야 윤기가 돈다. 양봉하는 벌이 먹은 설탕물이 배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꿀이 된다. 벌의 배 속을 통과하지 않은 상태는 그냥 설탕물이다. “그렇다면 한국 구라계의 원조는 누구를 꼽겠습니까?” “벽초 홍명희라고 봐요. ‘임꺽정’이 구라계의 대작이죠. 여기에는 조선의 정조가 들어가 있습니다”. 지방 촌놈이 아닌 서울 사람이 구라꾼 되기가 어려운 법인데, 유홍준은 일찍부터 시골 유적지 답사를 많이 하면서 한 꺼풀을 벗은 구라꾼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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