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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논설위원이 간다] 김학의 사건,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출처: 중앙일보]

bindol 2021. 1. 20. 06:25

김학의 사건을 뒤틀리게 한 두 대통령의 입장

2019년 3월 22일 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인천공항에서 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긴급 출국 금지돼 공항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이 과정이 법무부와 검찰의 서류·기록 조작 등에 의한 불법적 출금이란 공직 제보가 있어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JTBC 캡처]

‘김학의 사건’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대개, 건설업자의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은 파렴치한인데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법무차관으로 발탁했고, 경찰이 동영상의 주인공으로 확인했는데도 검찰이 2차례 불기소했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선악(善惡)이 분명하다. 그가 성범죄자인데도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것이고, 경찰이 제대로 수사했는데도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 차원에서 풀어줬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김 전 차관 응징은 권선징악일 터이다.

청와대, 경찰 내사 보고 받았다면
박 전 대통령, 발탁 철회했을까
여러 이해관계 복잡히 얽힌 사건
문 대통령 알고도 수사지시했나

사건의 이면은 복잡미묘하며 고도로 정치(공작)적이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고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김학의 조사팀의 일원이었다가 페이스북에 일련의 비판 글을 올리면서 ‘김학의 변호사’란 오해까지 받게 된 박준영 변호사의 말이 단서가 될 수 있겠다.

“모두가 비난하는 사람이다. 똑같이 비난하는 게 나도 편하다. 하지만 공적 기구에서 사건 관련 정보를 많이 접했다. 그 정보를 갖고 전문가로서 판단을 내려달라는 게 세금으로 수당을 받은 조사단원이었던 내게 시민들이 요구하는 바일 것이다. (중략) 김 전 차관 조사팀에 들어갈 때만 해도 대중들의 분노를 조사결과에 담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사건 기록은 밖으로 알려진 사실 관계와 많이 달랐다.”(2019년 11월)

실제 2013년 이래 김학의 사건은 이리저리 뒤틀리며 여기까지 왔다. 본인의 비리에 더해 검·경 간 경쟁, 특정 세력의 의도가 맞물리면서다. 그리고 두 대통령의 입장이 야기한 중력장도 있다. 더 꼬여갔다.

관련자들의 그간 발언과 2019년의 검찰 과거사위 발표, 그리고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에 따라 꾸려진 수사단의 발표, 과거사위가 수사 권고한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의 고소장 등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1. 박 전 대통령, 왜 김학의 고집했나

김 전 차관은 2013년 1월 검찰총장 후보군에 들었다. 당선인 신분이었던 박 전 대통령의 의중이었다. 최종 3인엔 들지 못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인사는 “후보추천위원 중 한 명이 ‘인사 때마다 빽을 쓴다’고 강하게 반대했다”고 전했다.

같은 해 2월 25일 청와대로 입주한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차관을 법무차관에 낙점했다. 주변에선 “직접 안 것 같진 않고 좋게 입력돼 있던 것 같다”고 했다.

검증을 한 민정수석실은 김 전 차관에 부정적이었다. ‘동영상 건 얘기가 있고 경찰에겐 없다고 한다. 만약 이런 게 있다면 큰일 난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음해로 여겼다고 한다. 당시 민정수석이던 곽상도 의원이 직접 김 전 차관에게 “왜 차관을 하려느냐”고 단념시키려 했다가 다음날인가 대통령 주변에서 한소리 들었다는 것도 그 무렵이다. 대통령을 설득할 확실한 게 필요했다. 곽 의원의 말이다. “서면으로도 비서실장 통해서도 보고하고 여러 방향으로 했다. 대통령의 생각을 바꾸려면 그냥 말로는 안 되고 (경찰이) 내사한다거나 하면 그걸 근거로 (대통령을 설득)하면 좋은데 경찰에 물었더니 ‘(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이는 2019년 수사단도 밝힌 내용이다. 2013년 3월 초부터 내정 발표 때인 13일까지 경찰은 수차례에 걸쳐 구두 또는 서면으로 “동영상을 확보한 사실이 없고 현재 내사나 수사 단계는 아니다”라고 보고했다.

실상은 달랐다. 수사단에 따르면 경찰청의 특정과 팀장이 3월 초 동영상을 봤고, 같은 달 4~8일 3회에 걸쳐 동영상 내용이 포함된 34쪽의 피해상황 진술서를 e메일로 받았다. 내사였다. 당시 지휘 라인에 있던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내게 보고되었어야 할 사항임에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박지원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현 국가정보원장)에겐 3월 초 동영상이 담긴 CD가 건네졌다. 박 의원은 그 무렵 인터뷰에서 “경찰 고위 간부로부터 받았는데 검찰이 송치 지휘를 하면 경찰은 더 이상 수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국회 법사위에서 이를 따져달라며 건네받았다”고 말했다.

기이한 건 또 있다. 당시 경찰청 수사기획관이 지난해 “3월 9~10일 정무수석실 비서관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김학의에 대한 첩보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심각하다. 정무수석실에 확실히 건의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11일 경찰청장에게 보고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민정수석실은 검찰, 정무수석실은 경찰을 관장한다. 해당 비서관은 경찰 출신이었다.

당시 정무수석이었던 이정현 전 의원에게 물었다.

김학의 사건 어떻게 진행됐나

관련 보고를 받았나.

“우린 안전·치안만 다뤘기 때문에 우리 영역 밖이다. 나에게 보고할 사안이 아니다.”

 

경찰 출신 비서관이 알 수 있지 않았나.

“본인이 궁금해서 물어봤을 순 있을지 모르나, 알아야 할 의무나 보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해당 비서관은 “본인이 착각을 일으킨 건지, 나는 보고 받지 않았다”고 했다.

어쨌거나 민정수석실엔 정보가 없었던 셈이다. 민정수석실 인사들은 지금도 “뒤통수 맞았다”고 여긴다. 그 연원으로 검·경 수사권 갈등 속에서 검찰 고위직을 잡으려는 일부 경찰의 의도가 깔렸다고 보고 있다. 곽상도 의원은 통화에서 “경찰의 목적을 위해 국가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2019년 7월 제출한 그의 고소장엔 특히 “일부 경찰대 출신들끼리만 김 전 차관 정보를 입수 공유했다”는 대목이 있다. 경찰은 강하게 부인한다.

이 마당에 부질없긴 하나 이런 질문들을 던져볼 순 있겠다. 박 전 대통령이 도대체 왜 김 전 차관을 잘 봤을까. 민정수석실이 만일 내사 사실을 입수·보고할 수 있었다면 대통령의 입장이 달라졌을까. 혹여 민정·정무수석실 사이를 못 넘을 정도로 검·경 갈등이 심했던 걸까. 만에 하나 보고됐다면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 못 했거나 아니면 정권 초기라 덮을 수 있다고 본 걸까.

#2. 문 대통령, 수사 지시할 때 이렇게 될 줄 몰랐나

이제 사건 성격을 말할 때다. 김학의 사건으로 불리지만 발화점 자체는 건설업자 윤중천과 몇몇 여성들 간의 고소전이었다. 이 와중 2012년 말 윤중천의 차에서 동영상이 발견됐다. ‘동영상=성범죄’란 국민적 공분 속에서 경찰은 김 전 차관을 특수강간 혐의로 송치했다. 검찰 수사가 두 차례 이어졌지만 모두 불기소 처분됐다. 여성들 진술의 신뢰성이 문제가 됐다. 검찰시민위(2013년 1차)와 법원의 재정신청(2014년 2차)도 달리 판단하지 않았다. 박준영 변호사는 “여성들은 꿈쩍도 않는 윤중천보다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김학의까지 엮어야 자신들이 윤중천으로부터 받은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했을까. 여러 여성이 김 전 차관을 엮어 특수강간을 주장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의 처음과 끝, ‘돈’이었다”고 쓴 일이 있다.

조사팀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박 변호사가 2019년 3월 초 김학의 조사팀에서 나왔는데, 그때 무고 얘기가 오갈 정도였다.

하지만 기류가 돌변했다.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 전 차관 사건을 거명하며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엄정한 사법처리를 해 주기 바란다”라고 말하면서다.

 


박 변호사는 이후 “대통령의 철저한 수사 지시가 있는 상황에서 김학의·윤중천을 구속하고 싶겠지만 그렇게 진행이 어려워 이런 답보가 계속되는 거다. 이 사건의 증거가 그렇다”(4월 28일),“김 전 차관은 어떤 혐의로든 기소할 것 같다.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고 국민 여론이 김 전 차관에 우호적이지 않다”(5월 9일), 김 전 차관 구속 후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권력의 의지와 여론의 압박으로 집요하게 파고 또 파서 사람을 잡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 ‘무서운 세상을 본 충격’으로 먼저 다가왔다”(5월 17일)고 토로했다.

김 전 차관의 불법 출금 의혹이나, 애초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친정권 인사가 보고서를 난도질했다는 주장도 이 무렵 나온다.

박 변호사는 한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이 사건에 담긴 여러 이해관계와 문제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면 그 지시를 함에 있어서 신중하지 않았을까.” 실제 김 전 차관이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건 그간 논란이 됐던 사안이 아닌, 수사단의 별건 수사였다.

그러고 보면 이뿐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사안들이 대부분 철저하지 않은 결론으로 귀결되곤 했다. 곽 의원은 “밑의 사람들의 잘못된 보고에 대통령이 속은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누가 문 대통령에게 입력한 것일까.

고정애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고정애 논설위원이 간다] 김학의 사건,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