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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색소폰을 배웠던 시간[출처: 중앙일보]

bindol 2021. 1. 20. 06:30

장강명 소설가

 

전업 작가의 일상은 별 게 없다. 오늘은 어제 같고, 어제는 그제 같았다. 지난해는 재작년과 비슷하게 보냈는데, 올해는 지난해와 비슷하게 보내게 될까? 앞으로 평생 이렇게 사는 건가? 그건 싫었다. 새해를 맞아 기타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악기를 익히며 우울감도 극복하고 싶었다.

이제는 더 연주하지 않는 악기
연습한 시간은 다 쓸모없었나
다른 악기 배우며 느끼는 것들

전화번호를 검색해 집 근처 실용음악학원에 연락한 날이 마침 원격 수업만 할 수 있었던 수도권 학원들에 소규모 대면 수업이 허용된 날이었다. “레슨받아도 괜찮나요?” 하고 물으니 전화를 받는 원장 선생님이 “오늘부터 괜찮대요”라고 대답했다. 목소리에 간절함이 묻어났다.

며칠 뒤 기타를 들고 학원에 찾아갔다. 아내가 한때 치던 통기타가 집에 한 대 있었다. 전에 기타를 쳐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초짜라, 이제 겨우 기본 코드를 더듬더듬 짚는 수준이다. 얼마나 오래, 꾸준히 연습하게 될지 솔직히 아직은 자신이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음악 시간에 두드리고 불었던 실로폰이나 리코더 등을 제외하면 제대로 악기를 익히는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어릴 적 피아노를 조금 배웠고, 직장 생활을 하며 틈틈이 학원에서 알토 색소폰을 불었다. 색소폰은 띄엄띄엄 10년쯤 익혔는데, 마지막까지도 기본 연습곡들을 간신히 연주하는 수준이었다.

사실 기타를 좋아하면서도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그동안 못했다. ‘새 악기를 배우는 것보다 기왕 배운 악기를 제대로 마스터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컸다. 이번에 그 미련을 완전히 버리게 된 셈이다.

애초에 기타를 더 좋아하면서 왜 색소폰을 배웠느냐. 딴에는 신중한 계산의 결과였다. 서른 가까운 나이에 악기를 배우려니 ‘평생 즐길 수 있는 악기를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나는 내가 재즈를 좋아하게 될 줄 알았다. 나이가 들면 록을 멀리하고, 좀 더 부드러운 음악을 듣게 되지 않을까 예상했다.

한편으로 기타는 주변에 잘 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어지간히 노력해서는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듯했다. 비교적 노력을 덜 들이면서도 나중에 아마추어 밴드에 가입해서 활동하기 적당할 악기, 혼자 솔로 연주를 즐길 수도 있는 악기가 뭘까 고민하다 보니 색소폰이 근사한 답변 같았다.

확실히 10대 시절에 듣던 시끄럽고 과격한 헤비메탈은 40대가 되면서 잘 듣지 않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즈나 색소폰에 푹 빠지지는 않았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취미로라도 악기를 배우려면 그 정도 열정으로는 부족하다. 연주하는 악기와 음악 장르를 사랑해야 한다.

결국 15년여 만에 원점에 돌아왔다. 여전히 록을 사랑한다. 언제 들어도 위안이 되는, 너무나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블루스 록 노래가 몇 곡 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언젠가 그런 곡을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 소망이지만, 그런 종류의 소망은 투입 비용 대비 효과 같은 개념과 애초에 타협할 수 없는 것 같다. 전엔 미처 몰랐다.

나는 미래를 몰랐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몰랐다. 삶의 모든 측면에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는 사실도 몰랐다. 지금도 같은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색소폰을 배웠던 시간은 전적으로 낭비였다’ 같은 생각 말이다.

 


기쁘지 않은 순간, 나중에 따져보기에 의미나 쓸모가 없는 순간들은 삶에서 내쳐야 하는 걸까. 그런 자세로 살면 인생이 무척 황량해질 것 같다. 과거를 바꿀 수도 없고,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환희에 차거나 의미로 충만한 시간은 결국 한 줌에 불과할 터이니. 게다가 그런 인생관은 현재를 그 자체로 음미하려는 노력 역시 오염시키고 만다.

우리는 삶을 통째로 긍정해야 하는 걸까? 슬프고 괴로웠고 끝내 상처만 남긴 순간들까지 껴안아야 할까?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야 한다고 가르친 현자도 있었고, 그건 아무래도 불가능해보이니 인생을 재미있는 농담이나 수수께끼로 여기고 어깨 힘을 빼라는 이도 있었다. 다른 말 같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 겹치는 조언이다. 푸시킨의 시구대로, 노하거나 서러워 말라는.

때로는 산다는 게, 어떤 선율이 될지 모르면서 한 음 한 음 소리를 내는 긴 즉흥 연주 같다. 때로 불협화음이 어쩔 수 없이 끼어들며, 불협화음 없이 좋은 곡이 될 수는 없다. 거기까지는 알겠고, 그 다음부터는 잘 모르겠다. 굳은살이 생기는 손가락처럼 마음도 단단해지기를 바랄뿐. 그러면 그 즉흥 연주 솜씨도 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장강명 소설가

[출처: 중앙일보] [마음 읽기] 색소폰을 배웠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