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병건 국제외교안보 디렉터
워싱턴 특파원 시절의 경험 중 지금도 떠오르는 게 2015년 9월 보수단체 집회에서 만났던 ‘현수막 백인 남성’이다. 이 집회엔 당시 바람을 일으키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가 참석했다. 트럼프를 보기 위해 군중이 몰린 집회 현장에서 만난 이 남성이 한국을 사례로 들어 불법이민 장벽을 설명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트럼프’라고 쓰인 현수막을 동료들과 함께 들고 있던 그는 “한국에도 남북 간에 장벽이 세워져 있지 않는가. 나도 (불법 입국을 막을) 장벽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한 고등학교를 거론했다. 이 학교는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란다. “세상에 이게 말이 되는가. 내가 낸 세금이 스페인어를 쓰는 학교에 들어간다. 불법체류자 자녀들을 가르치는 데 내 돈을 쓰고 있다.” 트럼프, 국경은 막았지만 이날 집회의 주인공은 단연 트럼프였다. 공화당의 현직 상원의원도, 전직 주지사도 찬조 출연에 불과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원고도 없이 토해 내는 트럼프의 즉석연설에 열광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주눅 들어 마음 한켠에 몰래 숨겨왔던 자신들의 속내를 거침없이 대변하는 트럼프는 이들에게 시원한 생수였다.
서소문 포럼 1/20 그간 21세기의 제국 미국은 나라 바깥에선 빛나는 장벽을 쌓아 올렸다. 과거 로마 군단이 고전하기도 했던 브리타니아와 게르마니아에서 미국은 대서양 동맹을 완성해 미국과 서유럽을 하나로 묶는 강철 대오를 구축했다. 동아시아에서도 일본에 이어 한국을 교두보 삼아 다시 제국을 꿈꾸는 중국을 틀어막는 장벽을 만들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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