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현 산업1팀 차장
『데카메론』은 14세기 페스트를 피해 이탈리아 피렌체 교외로 피신한 남녀 10명이 나누는 이야기를 그린다.
조반니 보카치오라는 작가 이름은 알지만 이 책을 실제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영역(英譯)본을 옮긴 ‘이중 번역’이 아니라 이탈리아어판을 우리말로 옮긴 완역본이 나온 게 2012년이니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
완역본 분량은 총 세 권, 1400페이지에 달한다. 두께에 비해 페이지를 넘기는 게 어렵진 않다. 670년 전에 쓴 글이지만 현대인이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다. 요즘 윤리관념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노골적인 내용도 적지 않다.
『데카메론』을 단테의 신곡(神曲)에 비견해 ‘인곡(人曲)’으로 부르는 건 르네상스 인본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이어서다. 산문 자체로도 뛰어나다지만 이탈리아어 원저를 읽지 않았으니 잘 알진 못하겠다. 다만 인간의 속마음을 때론 직설적으로, 때론 풍자를 섞어 풀어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150년쯤 뒤 영국의 셰익스피어는 『데카메론』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희곡을 썼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s Well That Ends Well)』라는 작품인데 지금도 종종 무대에 오른다.
다른 셰익스피어 작품보다 속임수나 배반, 욕망 같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그렸다 해서 어두운 희극(Dark Comedies) 혹은 문제극(Problem play)이라 불린다.
역병이 창궐하면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누군가를 탓하는 풍조도 강해졌다. 보카치오가 페스트를 겪은 뒤 인간의 희로애락을 우화로 적은 것도, 셰익스피어가 배신과 욕망이 뒤얽힌 희곡을 쓴 것도 이런 본성의 위험성을 직시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신종 전염병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고 대비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탓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희생양을 만들려 해선 안 된다. 셰익스피어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했지만 끝만 좋아선 좋은 게 아니다. 결말도, 과정도 좋아야 한다.
이 희곡 2막 3장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선한 것은 명성이 없어도 그 자체로 선한 거야. 악도 그렇지.” (Good alone is good, without a name; Vileness is so:)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인간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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