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강 언덕 저녁 산보

bindol 2021. 2. 3. 10:00

江皐夕步

披襟來古渡 피금내고도
漁舍暝烟黃 어사명연황
林背飛初月 임배비초월
船頭帶晩凉 선두대만량
水禽喧夜響 수금훤야향
岸芷越風香 안지월풍향
日暮佳人隔 일모가인격
相思枉斷腸 상사왕단장

 

강 언덕 저녁 산보

 

옷깃 헤치고 오래된 나루터 찾아와보니
어부 집에는 저녁연기가 노랗게 핀다
숲 뒤편으로 초승달이 날아오르고
뱃머리에는 저물녘 한기가 스며 있다
물새는 밤의 적막을 깨며 소리를 내고
언덕의 꽃은 바람을 타고 향기 풍긴다
해는 지고 아름다운 사람은 멀리 있어
그리움에 공연히 속만 태운다

 

정조 순조 연간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시인인 薑山 李書九(1754∼1825)가 지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한강 가로 나갔다.

옷자락 바람에 날리며 도강객으로 붐비던 나루터에 나가보니

어부의 집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누르스름하게 피어오른다.

수풀 뒤편에 떠오른 초승달은 날아가는 모양새이고,

뱃머리 쪽에서는 한기조차 느껴진다. 과객도 어부도 사라진 강가는 적막하다.

그때 마침 물새가 그 적막함을 깨면서 울고,

바람결에는 언덕에 핀 꽃향기가 실려 온다. 날이 저물었다.

멀리 떠난 그 사람은 오늘도 돌아오지 않았다.

행여나 이 나루터를 통해 올까 기대했으나 괜한 바람이었다.

보람도 없이 그리워하며 속만 태울 때 강가의 고즈넉한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