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섣달 그믐날

bindol 2021. 2. 7. 09:05

除日

 

忽忽坐終夕 홀홀좌종석
昏昏睡到晨 혼혼수도신
形骸從老病 형해종노병
曆紀任冬春 역기임동춘
不用桃符祝 불용도부축
休耽柏葉新 휴탐백엽신
惟須方寸內 유수방촌내
早認本來眞 조인본래진

 

섣달 그믐날

 

뒤숭숭하게 밤 지새우며 앉아 있다가
멍하게 졸린 눈으로 아침 맞았네
제멋대로 육신은 늙고 병들고
세월은 겨울에서 봄으로 흘러가누나
도부(桃符) 붙여 축원할 일 뭐가 있겠나
새로 담근 잣잎술도 탐내지 말자
오로지 바라나니 가슴에 담긴
본연의 참모습을 빨리 깨달아야지

 

澤堂 이식(李植·1584~1647)이 쉰한 살을 앞둔 1633년 섣달 그믐날의 심경을 썼다

 

풍속에 따라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고 있다.
한 해를 보내려니 뒤숭숭하고, 밤을 새우려니 멍하기만 하다.
나이 오십 줄에 들고 보니 몸은 늙고 병들고,
계절은 바뀌어 벌써 겨울이다.


또 바로 봄이 될 것이다.
그 모든 변화가 내 의지나 소망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새해가 되면 도부(새해에 악귀를 쫓는 부적)도 붙이고
잣잎술도 마시면서 운수가 잘 풀리기를 기원한다.
세상 풍습이니 남들처럼 나도 그렇게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일까? 정작 필요한 것은 외형이나
물질이 아니라 사방 한 치의 가슴이다.
올해는 마음이 본래 가진 진정성을 인정하고 양심이나 상식에 따라 살기를 바란다.
더 배울 것도 얻으려 애쓸 것도 없다.
누구나의 마음속에 이미 다 가진 것을 확인만 하면 된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