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夜獨坐
破屋凄風入 파옥처풍입
空庭白雪堆 공정백설퇴
愁心與燈火 수심여등화
此夜共成灰 차야공성회
눈 오는 밤 홀로 앉아
부서진 집에 세찬 바람 스며드는데
빈 뜰에는 하얀 눈이 쌓여만 가네
시름에 찬 마음과 저 등잔불
이 밤을 함께 새워 재가 되누나
인조와 효종 시대를 살다간 저명한 문신 文谷 김수항(金壽恒·1629~1689)이 지었다.
문곡의 나이 17세던 1645년 한겨울의 소회를 담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방안으로 칼바람이 스며들어 오돌오돌 떨고 있을 때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 마당에는 흰 눈이 소복소복 쌓여간다.
외로운 내 동반자는 오로지 등잔불뿐 밤을 꼬박 지새우고 나면
재가 되어 폭삭 스러질 것만 같다.
열일곱 청년은 흰 눈이 쌓이는 밤을 마음이 재가 되도록 새우며
무슨 걱정을 그리 많이 했을까? 밤새워 공부를 했겠지.
다음 해 2월에 치러진 진사시에 장원급제한 것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청년의 걱정이 일신의 성공에만 꽂혀 있었을까?
그해는 청나라 포로에서 돌아온 소현세자를 죽이고,
한창 세자빈을 죽음으로 몰아가던 격동의 한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김상헌이 귀국한 기쁨도 순간이고,
앞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혼탁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던 정국이었다.
눈이 아무리 대지를 하얗게 뒤덮어도 나라를 걱정하는
청년의 타들어가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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