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한가로운 거처

bindol 2021. 2. 8. 09:27


閑居

 

苔色閑來碧 태색한래벽
蟬聲睡後凉 선성수후량
蕭然聊隱几 소연요은궤
寂爾卽禪房 적이즉선방
山水忘憂物 산수망우물
文章却老方 문장각로방
心無關一事 심무관일사
幽味似茶長 유미사다장


한가로운 거처

 

한가해지자 이끼 빛깔 한결 푸르고
낮잠을 깨자 매미 소리 더 서늘하다
쓸쓸하여 안석에 기대앉았더니
적막한 게 선방이 따로 없구나
산수가 시름을 잊게 하는 물건이요
문장이 늙음을 물리치는 처방이군
마음에는 담아둔 일 하나도 없어
그윽한 맛이 차 맛처럼 길고 길어라


숙종 시대의 저명한 문인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1677~1724)이
무더운 여름 하루를 호젓하게 보냈다.

한가로운 때에는 평소와 다른 감각이 살아난다.
한가로워지자 이끼조차도 더 푸른 빛깔이 되고,
낮잠에서 깨자 매미 소리가 더 시원스럽게 들린다.
할 일도 없고 찾는 이도 없어 선방처럼 집안이 적막하다.

쓸쓸할 때는 안석에 비스듬히 기대 산과 물을 바라본다.
남들은 술로 시름을 잊지만 내게는 산수가 망우물(忘憂物)이다.
무료할 때는 글을 읽는다.
남들은 불로장생을 바라 약을 먹지만 내게는 글 읽는 것이 그보다 나은 처방이다.
오늘따라 짐스럽게 마음을 짓누르는 일이 하나도 없다.
차 맛을 음미하듯 한가로운 맛이 호젓하기만 하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