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들판의 메추라기

bindol 2021. 2. 8. 09:37

野田鶉行

 

野田鶉 야전순
生在野田中 생재야전중
結巢蒿荻叢 결소호적총
雖非托茂林 수비탁무림
亦足藏其躬 역족장기궁
歲暮天寒北風勁 세모천한북풍경
飢鷹厲吻當霜空 기응여문당상공
野田鶉 야전순
莫恨爾身微 막한이신미
得免爪攫充朝飢 득면조확충조기
乃知大小各有用 내지대소각유용
萬物皆天機 만물개천기


들판의 메추라기

 

들판의 메추라기
들판에 살면서
갈대밭에 둥지를 틀었다
깊은 숲은 아니라도
제 한 몸 숨기기에 넉넉하지
날씨 춥고 북풍 매서운 세모라
굶주린 매가 부리를 갈고 얼어붙은 하늘을 난다
들판의 메추라기
네 몸이 작다 탓하지 마라!
발톱이 나꿔채가 아침거리로 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사물은 제각기 쓸모가 있는 법
만물은 모두가 천기(天機)를 따라 산다


숙종 때의 시인 유하(柳下) 홍세태(洪世泰·1653∼1725)가 1705년
황해도 옹진에 머물 때 지었다.

시인은 매사냥을 감독하는 자리에 있었다.
사냥 잘하는 매를 보는 것은 신나고 호쾌하다.
그런데 갈대밭에 숨어사는 메추리가 눈에 들어왔다.
겨울 하늘 아래 매의 눈초리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만 같다.

그렇게 위태위태해 보여도 갈대밭 속에서 메추라기는 잘도 산다.
분명 저것이 하늘 아래 사물이 살아가는 이치리라.
아무리 작고 힘없어도 제 생명 누리며 살 권능을 부여받았다고
메추라기가 말을 전해온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