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산사에서 공부하는 동생에게

bindol 2021. 2. 9. 19:26

端甫肄業山寺有寄

 

新月吐東林 신월토동림
磬聲山殿陰 경성산전음
高風初落葉 고풍초낙엽
多雨未歸心 다우미귀심
海岳幽期遠 해악유기원
江湖酒病深 강호주병심
咸關歸鴈少 함관귀안소
何處得回音 하처득회음


산사에서 공부하는 동생에게

 

새 달은 동쪽 숲에 뱉어 나오고
풍경 소리 절간 그늘에 울려 나올 때
바람이 높이 불어 잎이 막 떨어져도
비가 많이 내려 귀가할 생각 못 하겠네
선산(仙山)에 살자던 약속은 까마득하여
강호에서는 술병만 깊어가겠네
함관령(咸關嶺) 넘어 기러기 오지 않으니
돌아온다는 오빠 소식 어디서 들을거나


여성 문인을 대표하는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이 지었다

 

십 대 후반의 동생 허균이 공부에 전념한다고 산사로 들어갔다
동생이 안쓰러워 안부를 겸해 시를 지어 보냈다
달이 숲 위로 솟아오르고 풍경 소리 나직한 밤이 되면
돌아오고 싶은 마음 불쑥 일어나겠지


하지만 비가 많이 내린 뒤라 엄두가 나지 않으리라

갑산으로 유배 간 둘째 오빠로부터는 편지가 전혀 없구나
돌아오겠다는 반가운 소식 전할 기러기는 그 높다는 함관령에 막혀 못 오나 보다.


오빠는 술로만 세월을 보내고 있겠구나
선경(仙境)에 옹기종기 모여 살자던 약속은 언제 이루어질까?
소식 전하니 학업에 힘을 기울이기 바란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