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바위 아래 고요한 서재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바위 아래 고요한 서재
서리 맞아 짙거나 옅은 나뭇잎
빛깔 모여 비단 나무 만들었구나.
텅 빈 서재에 할 말 잊은 채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노라.
楓巖靜齋秋詞
霜葉自深淺(상엽자심천)
總看成錦樹(총간성금수)
虛齋坐忘言(허재좌망언)
葉上聽疎雨(엽상청소우)
몽예(夢囈) 남극관(南克寬·1689~ 1714)이란 시인이 썼다.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누군들 가을 되어 단풍에 마음 잠시 설레지 않을 수 있으랴? 다리에 병이 있어 시인은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다. 단풍철이라 하여 남들처럼 산과 들로 훌쩍 떠나지 못하는 처지다. 그렇다고 해서 계절을 느끼는 감각이 둔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예민하다. 서리가 내린 뒤로 울긋불긋한 잎들은 그의 눈에는 총천연색 비단 옷감으로 보이고, 빈 서재에 홀로 앉은 그의 귀에는 마른 잎사귀를 간질이는 빗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모든 감각이 예민한 상태다. 조용히 틀어박혀 있다고 무감각한 것이 아니다. 마음은 벌써 가을에 젖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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