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신창 가는 길

bindol 2021. 3. 13. 15:28

[가슴으로 읽는 한시] 신창 가는 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신창 가는 길

메밀꽃은 피어 있고 콩잎은 노랗고
건너편 숲 주막에는 저녁 햇살 내려앉고

장승은 그늘에 서서 말을 걸어오고
새는 바람에 날려 도로 솟아오르고

나무 곁의 소는 울며 볏단을 날라 오고
풀밭의 귀뚜라미는 서늘한 바람 당겨온다.

가던 구름 빗줄기 뿌려 한쪽 들판 어둑하고
돌길 걷는 지친 나귀 어둠 깔려 더 바쁘다.



新昌道中

蕎麥花開豆葉黃(교맥화개두엽황) 隔林山店隱西光(격림산점은서광)
堠人瞑立如相語(후인명립여상어) 棲鳥風翻還欲翔(서조풍번환욕상)
樹外牛鳴輸遠稼(수외우명수원가) 草間蛩響引新凉(초간공향인신량)
歸雲漏雨郊陰黑(귀운누우교음흑) 石逕羸驂傍夜忙(석경리참방야망)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죽하(竹下) 김욱(金熤·1723~1790)이 젊은 시절 충청도 아산의 신창 고을을 지나가다 지었다. 저녁 무렵 들녘을 바라보며 걷는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가을 정취가 물씬 풍겨온다. 눈에 담아두기에는 너무 많은 정겨운 사물들, 아쉬운 대로 조금만 말해보련다. 메밀꽃, 콩잎, 산 아래 주막집, 길가의 장승, 자러 드는 새, 볏단 나르는 소, 풀밭 귀뚜라미. 그리고 지나가던 구름마저 아쉬운 듯 몇 줄기 비를 뿌리고, 나귀도 어둡기 전에 도착하려 걸음을 재촉한다. 깊어지는 가을 풍경 속에서 서울내기는 그 자신도 풍경의 일부가 된 듯이 감상에 젖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