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웃음

bindol 2021. 3. 13. 15:21

[가슴으로 읽는 한시] 웃음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웃음

가마처럼 작은 판잣집
작은 창 열지 않았더니
섬돌 앞에는 다람쥐가 오락가락
추녀 끝에는 새가 들락날락한다.
메밀을 껍질째 방아에 찧고
이파리가 붙은 무를 통째로 갈아
국을 끓이고 만두를 만들어
먹고 나니 낄낄낄 웃음 나온다.

 

 

書笑

板屋如轎小(판옥여교소)
矮窓闔不開(왜창합불개)
階前鼯出沒(계전오출몰)
簷外鳥飛回(첨외조비회)
蕎麥和皮擣(교맥화피도)
葑根帶葉檑(봉근대엽뢰)
和羹作餑飥(화갱작발탁)
喫了笑咍咍(끽료소해해)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50세를 전후하여 강원도 강릉에 머물 때 지었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버리고 전국을 방랑하다 잠깐 정착의 시간을 보내던 중이다. 겨우 한 사람 들어가 앉을 만큼 작은 집이다. 문을 닫아놓고 있었더니 다람쥐와 새가 제집으로 알고 드나든다. 먹지 않을 수는 없는 일, 메밀을 대강 찧고, 이파리도 떼지 않은 무를 갈아서 끼니를 때운다. 그래도 모양은 국이요 만두니 내겐 성찬이다. 다 먹고 나니 나도 모르게 낄낄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세상 돌아가는 게 우스운지 내가 하는 짓이 우스운지 알 수는 없어도 뱃속에선 자꾸만 웃음이 밀려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