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달밤에 탁족하기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달밤에 탁족하기
창포만큼 장수에 좋은 것이
탁족이라 들어와서
천천히 걸어 강가로 나가니
달빛마저 서늘하네.
묵은 때를 벗겨 보내려니
고결한 백로한테 부끄럽고
세상먼지에 찌들어서
마름풀 향기에게 미안하네.
발을 담갔다 뺐다 하는 것은
자맥질 잘하는 사다새와 똑같고
하얗게 씻은 살결은
돌을 꾸짖어 양을 만든 것과 같네.
세상의 비단옷 걸친 자들은
늘 이상해 보였지.
황금 대야에 온수를 떠놓고
평상을 떠나지 않는다네.
月夜濯足
曾聞濯足敵昌陽(증문탁족적창양)
緩步汀沙月色凉(완보정사월색량)
膩垢漂流羞鷺潔(이구표류수로결)
軟塵濡染惱蘋香(연진유염뇌빈향)
沈浮政似淘河鳥(침부정사도하조)
皓白眞同叱石羊(호백진동질석양)
常怪世間紈袴子(상괴세간환고자)
金盆溫水不離床(금분온수불리상)
1824년 여름에 정학연(丁學淵·1783 ~1859)은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 방법(消暑八事)'이란 여덟 수의 시를 썼는데 마지막이 바로 이 시다. 아버지 정약용이 같은 주제로 시를 쓰자 자기도 차운하여 쓴 것이다. 달이 밝게 떠오르자 집 가까이 있는 한강으로 나가 발을 담근다. 묵은 때를 벗기고 세상사에 찌들었던 마음까지 씻어낸다. 강에 사는 백로나 마름풀에는 정말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강물에 발을 담갔다 빼니 나도 사다새고, 때를 씻어 하얘지니 내가 곧 신선이다. 나도 강의 일부가 된 듯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황금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다놓고 방 안에 앉아 발을 씻는 이들이 있을 텐데 그들이 이 맛을 알까 모르겠다. '돌을 꾸짖어 양을 만든 것'이란 질석성양(叱石成羊)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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