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폭염에 괴로워하며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폭염에 괴로워하며
비 오는 날 구름 걷어낼 묘수가 아예 없듯이
무더운 곳에 바람 부르는 일 당최 불가능하지.
모기장 걷고 모기에게 살을 대주지는 못해도
힘없는 파리 보고 칼을 뽑아서야 되겠는가?
대숲에 이는 산들바람에 적잖이 기뻤건만
창문에 쏟아지는 석양빛은 호되게 괴롭구나.
잘 알겠네. 그대가 와주면 더위가 물러나겠지.
가을 강물 같은 정신에 얼음 같은 눈동자라서.
苦炎熱
雨天披雲曾無奈
(우천피운증무내)
熱處招風亦不能
(열처초풍역불능)
雖未開巾壽進禮蚊
(수미개주진례문)
寧敎拔劒怒微蠅
(영교발검노미승)
灑竹纖凉稍可喜
(쇄죽섬량초가희)
射窓斜陽苦相仍
(사창사양고상잉)
知是君來當辟暑
(지시군래당벽서)
神若秋水眸如氷
(신약추수모여빙)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 선생이 8월 초 폭염에 괴로워하다가 조금 익살을 섞어 시를 썼다. 비가 한창 내릴 때 비구름을 싹 걷어낼 능력 있는가? 없다. 그렇듯이 이 폭염에 시원한 바람을 불게 할 능력도 없다.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모기에게 피를 희사할 만큼 이타심을 보이지는 못해도 더위에 짜증 난다고 파리를 보고 환도를 뽑아들 만큼 괜히 성깔 부려서야 될까? 다 참자. 대숲에 산들바람이 잠깐 지나가는가 싶더니만 석양빛이 창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그 괴로움을 견디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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