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이사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이사
5년 동안 세 번이나 집을 옮겼고
올해도 또다시 이사했다.
벌판 넓은 곳에 오막살이 초가집
높은 산에는 고목이 듬성듬성하다.
농부들은 남 질세라 성을 물어도
옛 친구는 편지마저 끊어버렸다.
천지야 능히 나를 받아줄 테지.
표표히 가는 대로 맡겨둬 보자.
移家
五年三卜宅(오년삼복택)
今歲又移居(금세우이거)
野闊團茅小(야활단모소)
山長古木疎(산장고목소)
耕人相問姓(경인상문성)
故友絶來書(고우절래서)
天地能容我(천지능용아)
飄飄任所如(표표임소여)
조선 개국의 공신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1342∼1398)이 1382년에 지었다. 원대한 이상을 꿈꾸던 삼봉을 권력 세습하던 이들이 놔두고 보지 않았다. 유배와 핍박이 잇따라, 학도를 가르치던 집이 헐리면 그때마다 삶의 터전을 옮겼다. 삼봉재(三峯齋)에서 부평으로, 부평에서 다시 김포로 이사하고 보니 심기가 막막하다 못해 뒤틀린다. 5년 동안 세 번이나 이사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또 이사다. 드넓은 벌판에 오막살이 한 채가 새집의 주소요 높은 산에 듬성듬성 서 있는 고목이 새집의 조경이다. 스산하기 짝이 없다. 생면부지 농부들은 뉘시냐고 반갑게 물어 와도 개경의 옛 친구들은 뜸하던 안부 편지마저 똑 끊어버렸다. 인심이란 원래 그런 것, 세상이 아무리 나를 내쫓아도 천지는 언제나 받아줄 것이니 되어가는 대로 운명에 맡겨보자. 막막하던 심경에서 벗어나 그래 한번 해보자며 오기가 솟는다.
'가슴으로 읽는 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으로 읽는 한시] 그윽한 흥취 (0) | 2021.03.13 |
---|---|
[가슴으로 읽는 한시] 어화 (0) | 2021.03.13 |
[가슴으로 읽는 한시] 흥인문에 오르다 (0) | 2021.03.13 |
[가슴으로 읽는 한시] 달밤에 탁족하기 (0) | 2021.03.13 |
[가슴으로 읽는 한시] 저물 무렵 채소밭을 둘러보다 (0) | 2021.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