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우연히 읊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우연히 읊다
의관을 갖춰 입고
사리에 밝은 선비라면
빈민 틈에 굶주려도
걱정할 것 하나 없네.
만국(萬國)에는 구름 걷혀
하늘의 달을 함께 보고
천가(千家)에는 꽃이 피어
모두들 봄을 맞네.
소강절은 시를 읊어
기상을 드러냈고
주렴계는 술에 취해
천진함을 보여줬지.
옛날부터 큰 은사는
도시에서 살았나니
무엇 하러 외딴 데서
낚시질을 해야 하나?
偶吟(우음)
明哲衣冠士子身(명철의관사자신)
簞瓢陋巷不憂貧(단표누항불우빈)
雲開萬國同看月(운개만국동간월)
花發千家共得春(화발천가공득춘)
邵子吟中多氣像(소자음중다기상)
濂溪醉裏足天眞(염계취리족천진)
從來大隱皆城市(종래대은개성시)
何必投竿寂寞濱(하필투간적막빈)
―윤휴(尹鑴·1617~1680)
17세기에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은 백호(白湖) 윤휴의 시다. 선비라면, 지식인이라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보자.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외딴곳에 숨어 사는 것이 옳을까? 아니다. 그럴수록 더 큰 세상으로 나가 수많은 나라를 비추는 달을 함께 쳐다보고, 많고 많은 집에 피어 있는 봄꽃을 함께 보아야 한다. 음습하고 풀에 죽어 어둠과 그늘 쪽으로 가기보단 가난해도 좋으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세상으로 나가자고 한다. 구름 걷히고 꽃이 핀 세상을 함께 보자는 그의 꿈이 선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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