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붉은 나무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붉은 나무
철렁! 하고 잎사귀 하나
간밤에 떨어지더니
서리 내린 아침에는
숲이 온통 바뀌었네.
가여워라! 푸르던 빛을
붉게 비춰 부수더니
웬일인가! 흰 머리를
재촉하여 나게 하네.
거친 뜰을 바라보며
시름 겨워 쓸쓸할 때
먼 산에는 당돌하게
석양빛이 눈부셔라.
기억도 새로워라
지난해 이맘때쯤
병풍 같은 산길 뚫고
몽골로 향했었지.
紅樹(홍수)
一葉初驚落夜聲
(일엽초경낙야성)
千林忽變向霜晴
(천림홀변향상청)
最憐照破靑嵐影
(최련조파청람영)
不覺催生白髮莖
(불각최생백발경)
廢苑瞞?秋思苦
(폐원만우추사고)
遙山唐突夕陽明
(요산당돌석양명)
去年今日燕然路
(거년금일연연로)
記得屛風嶂裏行
(기득병풍장리행)
―이장용(李藏用·1201~1272)
고려 후기의 문신 이장용이 단풍을 보고 지었다. 뜰에 서 있는 나무가 어느 날 갑자기 붉게 물들었다. 어두운 밤 낙엽 지는 소리가 시인의 마음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더니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가을이 오고 단풍이 드는 것은 충격이다. 이제 숲 전체가 붉게 타고 나면 나도 시들어 가리라. 불쑥 찾아온 시름에 쓸쓸해 못 견디겠는데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석양빛은 거침없고 도도하게 세상을 비춘다. 뜨락에서 붉게 물드는 단풍을 보면 저무는 인생도 찬란하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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