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봄바람

bindol 2021. 3. 14. 06:03

[가슴으로 읽는 한시] 봄바람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봄바람

봄바람은 괜스레 살랑거리고
어느새 달이 떠서 황혼 되었네.
오지 않을 그대인 줄 잘도 알면서
그래도 문을 차마 닫지 못하네.

 

춘풍(春風)

春風空蕩漾(춘풍공탕양)
明月已黃昏(명월이황혼)
亦知君不來(역지군불래)
猶自惜掩門(유자석엄문)

―복아(福娥)

영조 임금 시절 전라도 부안의 기생인 복아가 지은 시다. 황윤석의 '이재란고'에 복아의 어머니가 부안의 명기 매창(梅窓)의 후손이라는 사연과 함께 실려 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밑도 끝도 없이 싱숭생숭, 그리운 사람이 한결 더 보고 싶어진다. 기다리는 줄을 안다면 제가 먼저 찾아올 법도 하건만 해가 다 지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달도 환히 떠서 이제 밤이다. 긴긴 대낮에도 오지 않은 임이니 밤인들 올까? 그러나 오지 않을 줄 너무도 잘 알지마는 대문을 닫지 않는다. 늦어도 괜찮으니 문을 밀고 들어온다면 좋겠다. 겉으로는 여인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대문 닫기를 아쉬워한다는 석(惜)이란 글자에 살짝 드러내보였다. 모든 게 봄바람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