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하나같이 우습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하나같이 우습다
|어영부영 살아온 서른 살 인생
부귀는 내 뜻대로 못하겠구나.
밤비에 온갖 고민 몰려 들고
추풍에 분노가 울컥 솟는데
인심은 왜들 그리 악착같은지
세상사는 하나같이 우습기만 해.
하늘 아래 밭뙈기나 얻어진다면
콧노래 부르면서 밭을 갈 텐데.
―유금(柳琴·1741~1788)
一呵呵(일가가)
等閒三十歲(등한삼십세)
富貴末如何(부귀말여하)
夜雨牢騷集(야우뇌소집)
秋風感慨多(추풍감개다)
人心皆齪齪(인심개착착)
世事一呵呵(세사일가가)
願得桑麻土(원득상마토)
耕雲任嘯歌(경운임소가)
영정조 시대 시인 유금의 시다. 호를 기하(幾何)라 하여 기하학에 탐닉한 인생을 드러낸 유금은 실학자인 유득공의 작은아버지이자 박제가의 절친한 벗이다. 수학과 공학, 천문학에 정통한 과학자이면서 한편으로는 시도 잘 쓰고 현악기도 잘 연주한 만능 예술가였다. 그의 제자가 바로 서유구(徐有�)다. 그렇게 우수한 자격을 갖췄어도 세상에는 그가 맡아서 할 일이 없었다. 요즘 말로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태생이 좋지 않았다. 나이 서른을 넘기고 보니 답답하기도 하고 분노도 일어난다. 밤비는 울적한 마음을 적시고, 가을바람은 비분강개한 심사를 부추긴다. 사람들은 갈수록 악착스러워지고, 세상 되어 가는 꼴은 껄껄 헛웃음만 나온다. 이쯤에선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돌아갈 땅이 없다. 서른 해 동안 인생을 정말 열심히 살아온 젊은이에게 닥친 회의와 갈등, 분노와 냉소에 연민의 감정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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