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종이연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종이연
들은 좁고 바람은 약해
내 뜻대로 날지 못하니
햇빛 속에 흔들흔들
짐짓 당겨 버텨낸다.
하늘 아래 회화나무
싹둑 쳐서 없애고서
새가 사라지고 구름 떠가듯 날려 보내야
가슴이 후련하리라.
-박제가(朴齊家·1750~1805)
紙鳶(지연)
野小風微不得意(야소풍미부득의)
日光搖曳故相牽(일광요예고상견)
削平天下槐花樹(삭평천하괴화수)
鳥沒雲飛迺浩然(조몰운비내호연)
'북학의'의 저자 초정(楚亭) 박제가가 10대 소년 시절에 썼다. 찬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아이들이 연을 날린다. 그 무리 속에 시인도 함께 끼어 있다. 연을 높이 날리고 싶지만 들이 좁고 바람이 약해 아이들은 겨우 버티고 있다. 게다가 키 큰 회화나무가 하늘로 날아갈 길을 막고 섰다. 저놈의 나무를 베어 쓰러트려야 까마득한 하늘로 연이 솟구칠 텐데. 하늘 끝으로 사라져간 새나 구름처럼 연이 시야를 벗어난다면 좋으리라. 아이들의 연날리기는 인생의 비상(飛上)과도 같다. 소년의 벅찬 포부를 연에 담아 하늘 높이 밀어올리고 싶은데 들은 좁고 바람은 약하다. 게다가 큰 고목까지 방해한다. 포기해야 할까? 장애물을 부숴 뜻을 펼칠 벌판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얼레를 잡은 소년의 가슴을 채운다.
'가슴으로 읽는 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으로 읽는 한시] 혼자 웃다 (0) | 2021.03.14 |
---|---|
[가슴으로 읽는 한시] 봄날 성산에서 (0) | 2021.03.14 |
[가슴으로 읽는 한시] 봄바람 (0) | 2021.03.14 |
[가슴으로 읽는 한시] 하나같이 우습다 (0) | 2021.03.14 |
[가슴으로 읽는 한시] 혼자 깨어 있다 (0) | 2021.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