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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6] 투기와 범죄의 차이

bindol 2021. 3. 19. 03:57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6] 투기와 범죄의 차이

신상목 대표

 

검색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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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3.19 03:00 | 수정 2021.03.19 03:00

 

 

한국청년연대, 청년진보당, 청년하다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LH 투기 의혹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일본어 사전에 의하면 ‘투기(投機)’는 본래 불교의 선(禪) 용어라고 한다. ‘스승과 제자의 마음이 투합(投合)하는 것’, ‘깨달음이 통하는 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투기의 의미이다. 이러한 뜻의 말이 왜 영어의 ‘speculation’에 해당하는 경제 행위를 의미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그 연원은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상품 및 화폐 경제가 발달한 에도시대의 일본에서는 오사카 도지마(堂島) 거래소에서 전국 규모의 쌀 거래가 이루어졌다. 사려는 쪽과 팔려는 쪽의 이해가 얽히면서 작황, 재고 등에 따라 형성되는 가격 상황을 ‘소바(相場)’라고 하는데, 도지마에는 매매를 중개하거나 대행하는 ‘소바시(相場師)’들이 활동하였다. 이들은 소바 변동을 예측하여 현대의 선물(先物), 레버리지와 같은 고도의 거래 기법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였고, 이러한 소바시의 상술이 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가격 변동을 제대로 예측해야 한몫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깨닫고 통하다는 본래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없지 않다.

투기는 현대적으로도 ‘가격 변동을 예측하여 (주로 단기 이윤 추구를 위해) 행하는 모험적 거래’라고 할 수 있다. 방점은 가격 변동의 불확실성에 따른 고위험이다. 만약 불확실한 가격의 위험이 헤징(hedging)될 수 있다면 투기와 투자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

땅 투기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한 가지 바로잡을 것은 LH 직원의 개발 예정지 토지 거래는 내부 정보를 통해 불확실성이 제거된 수익을 노린 ‘범죄’라는 것이다. 자기 책임하에 위험을 감수하는 투기와 내부 정보를 이용하는 부정부패는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신의 직장이라 불릴 정도로 혜택을 누리는 공공 부문의 직업의식 부재, 도덕성 결여, 관리 부실에 장탄식이 나온다. 이러한 일이 과연 LH뿐일지, 누구를 위해 공공 부문을 늘리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