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0] 일본 패망을 부른 가짜 깃발 작전
입력 2020.12.18 03:00
1931년 9월 18일 심야 주봉천(奉天) 일본 총영사관에 중화민국 교섭서(署) 일본과에서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일본군이 봉천 일대를 포위한 채 중국군을 공격하고 있으며, 중국군은 교전 확대를 우려하여 무저항으로 대응하고 있으니 일본군의 공격을 중지해달라는 긴급 요청이었다. 하야시 규지로(林久治郎) 총영사가 즉각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郎) 관동군 고급참모에게 연락을 취해 중국 측의 요청을 알리고 군사작전 중지를 요청했지만, 이타가키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금번 사태는 중국 측 공격으로 시작된 것이며 이를 철저히 응징하는 것이 군의 방침이니 더 이상 간여하지 말라는 협박이 더해졌다.
이때의 교전 사태는 일단의 관동군 수뇌부가 만주 점령 구실을 만들기 위해 중국군의 남만주철도 테러를 위장한, 소위 ‘유조호'(柳條湖) 사건으로 알려진 자작극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타가키는 계획을 입안한 주모자였는데도 태연히 거짓말과 협박을 일삼으며 불법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유조호 사건과 같은 모략 자작극을 ’가짜 깃발 작전’(false flag operation)이라고 한다. 마치 상대가 먼저 공격한 것처럼 누명을 씌워 공격의 빌미를 만드는 고전적 기만 수법이다. 힘에는 자신이 있지만 명분이 부족한 쪽에서 선택하는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야시는 관동군의 불온한 움직임을 눈치채고 현지 상황을 본국에 보고했지만, 군부의 위세에 눌린 내각은 군부의 독주를 제어하지 못했고, 중국 혐오를 부추기며 군부를 지지하는 여론 조작과 함께 일본은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군국주의로 치닫는다. 유조호 사건으로 만주국 건국에 성공하며 자작극에 맛을 들인 군부는 1937년 또 다른 자작극인 노구교(蘆溝橋) 사건을 빌미로 중국과의 전면 전쟁에 돌입한다. 그릇된 신념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부자연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세력이 국책을 농단하고 국민을 기망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일본은 이미 패망의 길에 들어서 있었다. 육군 수뇌부로 승승장구한 이타가키는 훗날 극동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사형에 처해짐으로써 죗값을 치렀지만, 역사를 되돌릴 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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