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32] 지금 중국에 필요한 건 ‘시력’
입력 2021.03.26 03:00 | 수정 2021.03.26 03:0
눈길을 한자어로 적으면 시선(視線)이다. 그 눈길이 어떤 시점(視點)을 이루는가는 때로 중요하다. 눈길이 이어져 시점으로 맺힐 때 높고 낮음의 차별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자(漢字) 세계로 보는 중국은 그런 눈길의 변환에 능숙하다.
/일러스트=박상훈
우선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면 정시(正視)다. 우리 쓰임은 없지만 중국은 평시(平視)라는 말도 잘 쓴다. 당당하게 상대와 마주 보는 동작이다. 비굴하거나 오만하지 않은 눈길이다. 그에 비해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는 눈길은 앙시(仰視)다.
보는 이의 굴종(屈從)이 먼저 느껴진다. 그 반대는 부시(俯視)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이다. 몸을 젖히거나 구부리는 앙부(仰俯)의 개념이 시선에 붙었다. 거만하게 대상을 얕보면 경시(輕視)와 오시(傲視)다. 심해지면 멸시(蔑視), 천시(賤視)에 이른다.
얼마 전 중국 최고 지도자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가 “세계를 당당한 눈길로 바라보자(平視世界)”는 발언을 했다. 이후 미국과의 갈등 국면에 이 말이 거듭 등장하면서 ‘이제는 미국과 대결하는 중국’이라는 맥락으로 정치적 상승 곡선을 타고 말았다.
‘잘나가는 중국’으로서의 자부심을 담은 발언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중국인의 눈길은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높낮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강한 사람에게는 ‘앙시’, 약한 대상에게는 ‘부시’의 눈길을 보낼 수 있다. 중화(中華)의 자부심으로 주변을 ‘멸시’와 ‘천시’의 시선으로 살폈던 과거의 착오를 되풀이할 가능성도 있다.
눈길보다는 시력(視力)이 중국에 더 필요하다. 높낮이는 임의로 바꿀 수 있어도 상(像)을 옳게 파악하려면 근시(近視), 원시(遠視), 난시(亂視)를 먼저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존비(尊卑)와 귀천(貴賤)을 따지는 전통적이며 어두운 세계관으로부터 중국이 이제는 더 자유로워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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