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33] 짝퉁과 ‘내로남불’
입력 2021.04.02 03:00 | 수정 2021.04.02 03:00
/일러스트=양진경
부패와 비리 척결로 ‘철혈(鐵血) 재상’의 이미지를 지녔던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가 2001년 상하이(上海) 회계(會計)대학을 방문해 이 학교 교훈(校訓)을 적었다. “가짜 회계장부 적지 말자(不做假帳).”
세계적인 가짜 제품, ‘짝퉁’으로 유명한 중국에 큰 경종을 울리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오늘의 중국에서는 가짜가 여전히 넘친다. 요즘은 알몸으로 절인 배추를 포클레인에 담는 장면, 물감을 입힌 귤 등의 소식이 나오면서 남이 먹는 식품에 가해지는 중국인의 야박하고 무자비함이 새삼 또 화제다.
역대 중국 문인들의 기록에 등장하는 짝퉁 얘기도 숱하다. 뼈에 흙과 종이를 발라 만든 가짜 구운 오리, 질긴 종이로 만든 가짜 가죽 신발, 진흙 겉면에 양(羊) 기름 발라 만든 가짜 초[燭], 홰나무나 버드나무 새잎으로 만든 가짜 차(茶), 심지어는 가짜 부부(夫婦)….
이 점에서는 고금(古今)의 중국이 서로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진짜와는 격이 전혀 다른 가짜, 진실과는 아주 거리가 먼 거짓, 겉으로는 착한 척하지만 속은 어둡기 짝이 없는 위선(僞善)의 맥락이다.
그렇듯 중국은 겉의 모양과 속의 내용이 다를 때가 많다. 따르는 척하지만 실제는 어깃장을 놓는 양봉음위(陽奉陰違)의 사고와 행위가 발달했다. 말은 달콤하지만 배 속에는 칼을 품은 구밀복검(口蜜腹劍)도 같은 맥락이다. 겉은 유가(儒家)의 인술(仁術)로 포장했지만 속은 법가(法家)의 가혹한 통치술로 일관했던 역대 왕조도 마찬가지다.
주룽지에 앞서 그런 중국의 인문 풍토를 크게 개탄한 이가 있다. 청말(淸末)의 사상가 엄복(嚴復·1854~1921)이다. 그는 수천 년 중국 문화의 병폐를 “거짓에서 시작해 부끄러움 없음으로 끝난다(始于作僞, 終于無恥)”고 요약했다. 그러나 중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내로남불’의 거짓과 위선이 이어지는 우리 사회에도 큰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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