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616] 폐시묵양 (閉視默養)

bindol 2021. 4. 1. 04:36

[정민의 世說新語] [616] 폐시묵양 (閉視默養)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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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4.01 03:00 | 수정 2021.04.01 03:00

 

윤증(尹拯·1629~1714)이 제자 이번(李燔·1657~1704)에게 준 편지, ‘여이희경(與李希敬)’이다. “눈병으로 고생하는 것이 비록 상중(喪中)에 으레 있는 증상이나, 마음 써서 조치하지 않을 수가 없네. 눈을 감고 묵묵히 수양하는 것 또한 한 가지 방법일 것일세. 내가 늘 이것으로 일단의 공부로 삼고 싶었지만 능히 하지 못해 괴로우니, 마음을 응축시켜 가라앉히는 공부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네. 매번 부끄럽게 여기다가, 이번에 대략 말해 보는 것일세.”

상주가 우느라 눈이 짓물러 눈병이 생겼다. 요즘이야 눈약 몇 번 넣고 약 먹으면 걱정할 일이 없겠지만, 과거에는 안질은 자칫 심각한 재난이었다. 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일 경우, 방치했다간 실명할 수도 있고, 백내장이나 녹내장은 속수무책으로 생명을 위협했다.

윤증은 제자의 눈병 소식을 듣고, ‘폐시묵양(閉視黙養)’의 처방을 내밀었다. 눈을 감고 침묵으로 마음을 기를 것을 주문했다. 그 보람은 응정지공(凝定之功)이다. 응(凝)은 단단히 응축시키는 것이요, 정(定)은 들떠 날리던 기운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것이다.

 

신성하(申聖夏·1665~1736)가 아우 신정하(申靖夏·1681~1716)가 눈병으로 고생한다는 말을 듣고 써준 시도 있다. “내 손은 아무짝에 쓸데가 없어, 깊이 앉아 무릎을 안을 수밖에. 눈을 감고 마음을 맑게 하여도, 많은 근심 더더욱 한둘 아니리. 공력 씀이 깊지 않음 깨닫게 되니, 내게 외려 생병이 나게 하누나.(吾手無所用, 深坐但抱膝. 閉觀欲淸心, 衆慮愈非一. 用工覺不深, 令人轉生疾.)” 이렇게 조바심을 내다가, 둘째 수에서는 “마음과 눈 다 함께 환하게 되면, 곱고 추함에 어지럽지 않게 되겠지. 눈 밝으면 마음 외려 어둡게 되어, 진짜에도 현혹되어 가짜라 하리. 그래서 감식안 능히 갖춤은, 밝음이 눈에만 있진 않다네.(心眼明俱到, 了無姸媸亂. 眼明心苟昧, 雖眞眩作贗. 所以能鑑識, 明不專在眼.)”

앞서는 ‘폐시(閉視)’를 말하더니, 다시 ‘폐관(閉觀)’을 처방으로 내놓았다. 우리는 많이 보고 많이 들어 탈 난 사람들이다. 못 볼 것을 너무 보고, 안 들을 일을 많이 들어 마음이 망가졌다. 눈을 닫고 귀를 막아 마음 간수에 더 힘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