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617] 금입옥사 (金入玉謝)
입력 2021.04.08 03:00 | 수정 2021.04.08 03:00
출근길에 내부 순환로를 타고 마장 나들목을 내려설 때면 날마다 달라지는 청계천변 화려한 색채의 향연에 눈이 그만 어지럽다. 올봄은 꽃이 순차적으로 피지 않고 폭죽 잔치 하듯 여기저기서 펑펑 터진다. 순서도 계통도 없이 조급하다. 답답하기만 한 세상 표정과는 정반대다.
노산 이은상은 “진달래 피었다는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지 못하고”라고 썼다.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가 몸을 연 뒤 목련과 철쭉이 뒤를 이어야 할 텐데, 어느새 라일락까지 동시다발로 뛰어들어 세상이 온통 꽃잔치를 열었다. 올봄 꽃은 앞뒤 안 가리고 핀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춘일(春日)’ 시는 이렇다. “수양버들 금이 들고 매화엔 옥 시드니, 작은 못의 새 물이 이끼보다 푸르구나. 봄 근심과 봄의 흥이 누가 깊고 얕은가? 제비는 오지 않고 꽃은 피지 않았네.(金入垂楊玉謝梅, 小池新水碧於苔. 春愁春興誰深淺, 燕子不來花未開.)”
오련한 옥색 청매가 피어서는 봄비에 지나 싶더니 수양버들에 황금빛 눈이 하나둘 박히기 시작힌다. 이렇게 해서 겨우내 우중충하던 버들가지가 눈록(嫩綠)의 황금빛을 띠면 이제 곧 봄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옥사매(玉謝梅)의 ‘사(謝)’는 시들어 떨어진다는 의미다. 못에는 눈 녹아 불어난 봄물이 어느새 가득 넘쳐 찰랑댄다. 손을 담그면 물이 들듯 푸른 빛깔이다.
이때의 정서는 근심도 아니고 흥취도 아닌, 말로는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싱숭생숭한 감정이다. 왠지 고즈넉이 자우룩하다가도 한순간 이유 없이 두근대는 설렘으로 이끈다. 어느 쪽의 정서가 더 강한지도 알기 어렵다. 금방이라도 누가 올 것 같고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데, 막상 아무 일도 없다. 강남 갔던 제비는 아직 오지 않았고, 꽃도 활짝 피어나지 않았다. 이 둘 사이에서 왠지 모를 두근거림과 까닭 없는 우수가 나를 휩싼다.
그러다가 꽃들이 일제히 피어나면 팥죽 끓듯 하던 변덕마저 그만 활짝 개여서, 파스텔톤 색채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러고 나서 “꽃 지고 새 잎 나니 녹음이 깔렸는데”의 여름이 불쑥 우리 곁을 차지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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