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35] 당나라 벤치마킹
입력 2021.04.16 03:00 | 수정 2021.04.16 03:00
방위를 가리키는 동서남북(東西南北)에는 문화적 함의가 제법 크게 담긴다. 중국의 전통적 예법(禮法) 문맥으로는 특히 그렇다.
우선 ‘남북’은 종적(縱的) 질서를 지칭할 때 자주 등장한다. 제왕이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앉는 좌북면남(坐北面南) 설정이다. 북쪽에서 남쪽을 향하는 이는 높은 사람, 그 반대는 신분이 낮은 존재라는 그림이다. 지위(地位)의 높고 낮음을 가르는 존비(尊卑) 개념이 뚜렷하다.
그에 비해 횡적(橫的) 배열의 동서(東西)는 ‘주인과 손님’ 구도다.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이 집채의 동쪽에 서도록 규정한 이전 예법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따라서 ‘동서’는 주객(主客) 배열이다.
‘남북’의 함의는 봉건적 왕조에나 겨우 어울릴 법한 관념이라 잘 쓰기 어렵다. 요즘 세상에 누가 제왕이고, 누가 신하냐를 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현대 중국인들은 ‘동서’ 개념을 잘 활용한다.
정치적으로 이 물꼬를 먼저 튼 이는 마오쩌둥(毛澤東)이다. 그는 1957년에 중국을 동풍(東風), 서구를 서풍(西風)으로 지칭했다. 이어 “이제는 동풍이 서풍을 눌렀다”고 호언장담했다. 사회주의 중국이 자본주의 서방을 이겼다는 자랑이었다.
요즘은 동쪽이 상승하고 서방은 가라앉는다는 주장을 편다. 이른바 동승서강(東升西降)이다.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習近平)이 발언한 뒤로 관영 매체들이 크게 다루고 있다. 그냥 부상(浮上)을 넘어 세계 제패(制霸)까지 말하는 수준이다.
유명 소설 ‘서유기(西遊記)’는 서쪽으로 가서 진리의 말씀인 불경(佛經)을 받들어 온다는 ‘서천취경(西天取經)’의 스토리다. 국력이 가장 번성했던 당나라 때 실화가 배경이다. 남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겸손과 포용의 자세다. 고루한 옛 ‘동서남북’의 시선으로 다시 세상을 바라보려는 요즘 중국이 곰곰이 되새기면 좋을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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