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은 길이 넓이 부피 각도 등을 따진다. 두 도형이 포개져 딱 맞으면 합동이다.
그런데 별 희한한 관점이 나타났다. 오일러 표수 공식에 따르면 정육면체나 정십이면체 등의 다면체 도형에서 '꼭짓점 수-모서리 수+면 수 = 2'다. 모두 2로 떨어지니 두 도형은 합동(合同)은 아니지만 동형(同形)이다. 오일러는 동형의 관점에서 퀴니히스베르크시에 놓인 7개 다리의 실제 위치를 단순한 동형으로 전환시켜 난제를 풀었다. 지하철 노선도도 실제의 지리적 거리 등을 무시하고 위상적 차원에서 각 역 간의 연결성만을 고려한 동형의 그림이다. 도형을 연구하는 기하학(geometry)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자리(位)나 생김새(相)를 탐구하는 위상수학(topology)이 적용된 것이다. 1700년대 오일러가 위상수학 사고의 바탕을 깔았다면, 푸엥카레는 1900년대 전후에 그 마당을 일구었다. "공과 맥주컵은 전혀 다른 도형이지만 위상적으로는 동형이다!" 해괴망측한 소리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일리 있다. 찰흙 공을 누르고 당기고 펴면 맥주컵 모양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구멍을 뚫지 않는 한 아무리 변형시켜도 도넛 모양을 만들 수 없다. 도넛은 커피잔처럼 하나의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넛과 커피잔은 전혀 다른 도형이지만 위상적으로는 동형이다.
푸엥카레는 위상 사고를 통해 우주의 생김새를 추측했다. 푸엥카레의 추측이다. 우주는 3차원 공 모양일까? 도넛 모양일까? 둘은 전혀 다른 위상이다. 바야흐로 수학은 장비나 실험 없이도 머릿속 상상력만으로 우주를 추측하는 단계까지 갔다. 수학자 머릿속이 우주가 되어.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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