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항녕의 조선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 ‘열하일기’ 박지원의 당당함, BTS의 보편성에 닿다[출처: 중앙일보]

bindol 2021. 4. 30. 04:24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 ‘열하일기’ 박지원의 당당함, BTS의 보편성에 닿다

‘오래된 미래’ 조선 속으로

겸재 정선의 걸작 ‘비 개인 인왕산’(仁王霽色圖). 조선의 산에는 소나무·참나무에 진달래가 소복소복한데, 그 속은 화강암이다. 속이 옹골찬 시대의 조선 사람들 같다. [중앙포토]

 

“하늘이 수많은 백성을 낳고 임금을 세웠으니, 임금은 백성을 먹고살게 하고, 다스려 편안하게 한다. 임금의 길에 잘잘못이 있으면 그에 따라 민심이 따르거나 등질 것이고 천명 또한 머물든지 떠나갈 것이다. 이는 변치 않는 이치이다.”

‘게으르다’ ‘부패했다’라는 이미지
제국주의가 덧씌운 일방적 낙인
‘서구 근대’에 저항한 500년 문명
미래 향한 비전으로 재조명해야

 
1392년 7월 28일, 조선 태조가 즉위하면서 반포한 교서의 첫마디다. 나라 이름을 일단 고려로 하고, 17개 조항의 국정 방향을 제시했다. 518년 뒤 1910년 조선 왕조는 일본 식민주의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민심도 천명도 떠났다. 헌데 정말 ‘조선’은 저 때 시작하고 저 때 망한 것이었을까.

 
고려 말 공민왕 때 이미 성리학 사서(四書)가 지식층에서 읽혔고 정몽주·정도전이 세미나까지 했지만, 조선이 개국된 지 100년이 지나서도 성종과 서거정은 불교의 윤회가 있는지 걱정했다. 사람들은 삼년상이 아니라 화장을 했고, 훈민정음을 찍을 종이는 문화센터인 사찰에서 가져왔다. 사림이 서원 시스템에 의해 양성되기 시작한 때는 1548년 백운동서원 설립을 기점으로 하더라도 조선이 건국된 지 무려 150년이나 지난 중종 이후였다. 재산 상속은 고려 때와 마찬가지로 균분 상속이었고, 장자 상속은 개국한 지 200년이 지나야 나타났다.

 

2008년 화재로 무너졌다가 2013년 복원된 숭례문. [중앙포토]

그뿐이랴. 1960년대까지 시골 살던 할아버지의 일상은 걸어서 충청도 성환 5일장에 가고 품앗이로 농사짓던 조선의 농부와 다름없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설과 추석이면 고향을 찾아 차례를 지낸다. 얼마 전까지 매장 문화가 대세였고, 나 어렸을 땐 집에 상청(喪廳)을 차렸다.

 
허나 우리는 신축년보다 2021년이 익숙하고, ‘성경’ 하면 성인의 말씀인 『논어』 『맹자』가 아니라 기독교의 바이블(Bible)을 떠올리고, ‘대학’ 하면 『대학』이 아니라 4년제 컬리지(college)를 떠올린다. 나는 과거를 보지도 않았고 조선인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6-3-3-4의 학제를 마쳤다. 나의 언어와 사유는 계몽주의에서 시작된 유럽 문명의 연장에 있다.

 
이렇게 조선은 이씨왕조나 국가의 흥망으로 구획할 수 없이 시작됐고 지속되다가 흐려졌다. 그렇다면 정말 조선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걸 ‘조선-문명’이라고 부르거니와, 함께 탐구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조선 사회를 역동적으로 움직인 메커니즘이나 제도, 사상을 살펴본 『조선의 힘』이란 책을 낸 적이 있다. 평소 내게 따뜻했던 한 선배가 물었다. “그런 시스템을 가졌던 나라가 왜 망했어?” 이 짧은 질문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① 조선을 왕조와 등치시키는 습관 ② 어떤 시스템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탐구를 바로 흥망의 그것으로 대체하는 오류 ③ 망하지 않는 세상이 있을 것 같은 착각 ④ 앞의 셋을 포괄하는 조선에 대한 망국 콤플렉스. 나는 이렇게 답했다. “건강한 사람도 죽어요!”

  
문명의 차이를 폭력적으로 서열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밝힌 에펠탑. 박람회장에는 세계 곳곳의 원주민을 전시한 인종전시관도 있었다. 무엇이 문명이고 무엇이 야만인가.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우주의 모든 것은 변한다. 인간이 아는 유일한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만물이 변한다는 것이다. 『주역』(周易)의 역(易)은 다름 아닌 변화고, 따라서 당연히 ‘역’의 영어 번역도 ‘더 체인지’(The Change)다. 나도 전주대도 대한민국도 인류도 언젠가 죽거나 사라지리라. 조선은 그렇게 흥했다 망한 나라이자 사회였다. 허나 이 땅에서 벌어졌기에 평심하게 볼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조선을 묘사한 서양인들의 책을 보면 불결과 관리의 부패가 심각했다” “왕도 나라를 일본에 팔았다” “조선인은 게으르다” “500년 허송세월 때문에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 것이 일제 강점기이다” 등으로 말했던 것이 알려져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이 사람만 그랬을까. 식민지·전쟁·군사독재를 겪은 세대, 또는 그 세대에게 배운 나와 같은 세대들은 비슷하게 조선 사회를 위축된 콤플렉스 속에서 인식한다. 임진왜란 때 망했어야 할, 근대화에 뒤처진, 그래서 식민지가 된 나라로만 보는 경향이 강화됐다.

 
앞의 ‘더럽다’ ‘게으르다’ ‘부패했다’는 말은 선교사의 여행기에서 일부만 편취한 것이다. 여행기에는 조선 사람들이 총명하고 서로 협력하며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말도 함께 나온다. 하지만 영국·프랑스·스페인 등이 아시아·아프리카 원주민을 총칼로 공격하여 식민지로 만들었을 때 찍은 낙인은 ‘더럽다’ ‘게으르다’ ‘부패했다’였다. 이를 폭압적 지배의 합리화 이데올로기로 이용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더럽다’는 관념은 현미경을 통해 세균을 알게 된 뒤 도시 빈민들의 열악한 삶으로부터 자신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부르주아의 위생 관념이었다. ‘부패했다’는 낙인은 피식민지 정부의 권력을 강탈하는 방법이었다. ‘게으르다’는 모멸은 10세 아동에게조차 15시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하던 산업혁명기 노동착취자의 시각을 드러낸다. 농한기 너덧 달을 노는 것도 모자라 농번기에도 출퇴근이 없는 조선의 농민에게 가해진 시대착오적 왜곡이었다.

 
이렇게 사회경제의 차이, 문명의 차이는 도덕적 우열로 탈바꿈했다. 그래야 억압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멸절이 합리화되니까. 미국이 인디언과 맺은 400개가 넘는 조약 중 하나도 지키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1897년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 행사엔 1억 파운드를 지출한 영국인이 인도의 기근에 한 푼도 쓰지 않아 수천만 명이 굶어 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존감으로 다시 만나는 조선 - 문명
 

1907년 도쿄박람회에서도 인종전시회가 열렸고, 조선인 남녀가 동물로 묘사됐다. [사진 KBS 캡처]

병자호란 뒤 청에 끌려가 죽임을 당했던 삼학사의 한 사람이었던 홍익한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경서(經書)를 모르거나 뇌물을 받는 중국 관리를 보고 “위정자의 풍모를 찾아볼 수 없다”며 비판했다. 호란 때 항전파였던 김상헌 역시 사신으로 가서 관리의 부패, 지식인의 무책임을 보고 곧 명나라는 멸망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열하일기』의 주인공 박지원은 중국 북경에 가서 시종 여유 넘치고 당당했다. 자신들의 소양과 토대가 갖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자존감의 소산이다.

 
나는 21세기 한국 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서 홍익한과 박지원의 데자뷔를 본다. 대한민국이 인구·경제·군사력에서 세계 10위권이라는 점은 일단 논외로 하자. (단, 이런데도 늘 약소국 타령하는 분열증만은 짚고 가자.) 음악·체육·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특히 K팝의 세계화는 당연하다 싶었는데, 방탄소년단(BTS)은 아예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 그뿐인가.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 위기 역시 모범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검사 자체는 물론 사망자 파악을 신뢰할 수 없는 일본은 차치하고, 영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이 허둥대고 있는데, 한국은 K방역으로 최고 수준의 자기관리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옛날부터 역병(疫病), 전염병 관리는 그 나라의 총체적 역량을 보여준다.

 
이 보편성의 깊이와 폭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허나 이런 경험을 통해 역사를 보는 눈이, 조선을 보는 눈이 전환점을 맞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보편성을 자각하면 위상이 변하고, 그러면 관점도 달라진다. 그 눈에, 국가나 왕조와 동일시 될 수 없는, 환원할 수 없는 ‘조선-문명’은 어떻게 보일까. 함께 탐구해보자.
 

문명이 백인-남자의 것뿐인가

문명은 철학에서 경제까지 인류가 만든 라이프스타일을 포괄적으로 말한다. 물론 문명(文明)은 영어 시빌라이제이션(Civilization)의 번역어다.  
 
서구에서도 19세기 초반부터 널리 사용되는데, 앵글로색슨을 중심으로 한 남자-백인의 자기의식을 말한다. 식민지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문명은 미개나 야만의 대립어로 사용됐다.

 
조선 말에 살았던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이 기죽어 쓴 ‘개화한 자, 반개화한 자, 미개화한 자’는 바로 그 문명으로 향한 갈망이었다. 허나 21세기는 19세기식 개화나 문명에 저항하는 개화나 문명이 조명될 것이다. ‘조선-문명’이 그중 하나다.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고려대 한국사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고전학, 조선시대사, 기록학을 연구해왔다. 『조선의 힘』 『사통(史通)』 『실록이란 무엇인가』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등을 썼다.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는 조선을 로마문명·잉카문명처럼 지금과 다른 세상이자 문명으로 탐사한다.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 ‘열하일기’ 박지원의 당당함, BTS의 보편성에 닿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