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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91] 장기 연재물의 나라

bindol 2021. 5. 28. 03:59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91] 장기 연재물의 나라

신상목 기리야마 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만화 '베르세르크' 작가 미우라 겐타로의 부고.

 

지난 5월 6일 일본 만화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겐타로가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크 판타지 장르의 명작이라 불리는 ‘베르세르크'는 1989년에 첫 회가 시작된 이후 30년이 넘은 금년 초까지 집필이 계속된 장기 연재물이다. 10대에 이 작품을 접한 독자가 이제는 40대의 중년이 되었으니 그 세월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치밀한 디테일의 작화와 기상천외한 스토리텔링으로 사랑받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죽음에 팬들은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작자인 미우라가 20대 초반에 연재를 시작한 이래 30년 동안 하루 15시간씩 창작에 몰두하다 건강을 해쳐 불과 54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대목에서는 숙연한 마음마저 든다.

다크 판타지의 명작으로 꼽히는 만화 '베르세르크'를 30여년간 연재하다 지난 6일 54세의 젊은 나이에 별세한 만화가 미우라 겐타로.

일본은 장기 연재물이 많은 나라다. 가장 오래 연재된 작품은 고지마 고(小島功·1928~2015)의 ‘선인부락’이라는 4컷 만화로, 1956년부터 2014년까지 57년 11개월의 연재 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첩보물의 고전 ‘고르고13’은 1968년 첫 게재 이후 53년이 지난 지금도 연재가 계속되고 있다. 작자인 사이토 다카오가 84세인 지금도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 최장 연재 기록을 갱신할 후보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 일본의 전유물이 아니다. 에도시대 말기 작가인 교쿠테이 바킨은 ‘남총리견팔견전’이라는 기담 소설을 1814년부터 1842년까지 집필한 바 있다. 28년에 걸쳐 전 98권이 출간된 이 소설은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출판계를 휩쓴 에도시대 서민 문학의 금자탑으로 남아 있다.

 

창작의 고통은 출산의 고통에 비유되기도 한다. 수십 년간 창작물을 연재한다는 것은 구도자와도 같은 절제와 인내 없이는 여간해서는 해내기 어려운 위업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생애를 건 각고의 집념으로 창작에 전념하고, 독자는 그에 호응하여 작가에게 명예와 부를 안겨주는 선순환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긴 호흡의 역작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모습에서 일본 문화의 저력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