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35> 知止而后有定

bindol 2021. 6. 1. 05:10

- 알 지(矢-3)멈출 지(止-0)어조사 이(而-0)뒤 후(口-3)있을 유(月-2)차분해질 정(-5)

 

대체로 예측하지 못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참으로 난감한 처지에 놓였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머뭇거리거나 허둥대다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그러고서는 또 일을 그르쳤다는 생각에 걱정과 두려움에 떤다. 상대가 전혀 엉뚱하게 행동하거나 반응하여 그 의중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도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맨다. 밑도 끝도 없이 해대는 욕설이나 비난을 들으면 곧바로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억울해한다. 오해받아서 일이 꼬였거나 다른 사람과 관계가 뒤틀렸을 때는 만사가 귀찮아지고 사람이 싫어진다.

그런 때에는 그저 그렇게 일어나는 마음을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그렇게 해도 마음이 편안하다면 그렇게 해도 되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다. 그렇다면 돌파구를 마련하고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그때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일단 멈춤'이다.

그런데 안영의 경우처럼 난데없는 상황에서도 그게 가능한가? '대학'은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知止而后有定…慮而后能得"(지지이후유정…려이후능득)을 말한 것이다. 평소에 갖가지 상황에서 이런 방식으로 마음을 추스르고 사유하면서 慧眼(혜안)과 洞察(통찰)을 갖 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개인적으로 부닥친 곤혹스런 상황에서든 정치나 행정, 외교 따위에서 봉착하는 난관 앞에서든 섣부른 짓도, 서툰 짓도 하지 않게 된다.

다시 '知止而后有定(지지이후유정)'을 보자. "멈출 줄 안 뒤에야 차분해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止(지)'는 "멈춘다"는 뜻으로, "머문다"는 뜻으로 쓰이는 '止於至善(지어지선)'의 '지'와는 다르다. 생각해 보라. 머물 곳인지 아닌지, 머물 만한 곳인지 아닌지를 모르는 상황인데, 어찌 머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제대로 생각한 뒤에야 깨달을 수 있다"로 끝나는 이 구절에서는 머물 곳, 머물기에 알맞은 곳이 어딘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말하고 있지, 이미 머물 곳을 안 뒤에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걱정이나 두려움, 당혹스러움, 억울함, 분노 따위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때, 그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멈추어라! 일단 멈추어라! 흔히 "심호흡 한 번 해봐!"라고 하는 말과 같다. 평정심을 찾기 위해서 멈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냥 멈추는 것이 아니다.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멈추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억지로 멈추기만 해서는 마음이 가라앉거나 차분해지지 않는다.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비로소 차분해질 수 있다. 그래서 '지지이후유정'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