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 시(日-6)알맞을 중(丨-3)
한신이 背水陣(배수진)을 치자 의아했던 장수들은 "산과 언덕을 오른쪽으로 하여 등지고, 물과 못을 앞으로 하여 왼쪽에 두라"는 병법의 원칙을 단순히 외고 있었던 인물들이다. 그러했으므로 상황에 따른 變用(변용) 또는 活用(활용)을 할 수 없었다. 반면, 한신은 자유자재로 병법을 운용했다.
그가 언급한 "죽을 곳에 빠뜨린 뒤라야 비로소 살릴 수 있고, 망할 곳에 둔 뒤라야 비로소 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은 '손자병법' '九地(구지)'편에 나온다. 한신도 병법을 익힌 셈이다. 다만 실제 운용에서 다른 장수들과 차이가 났으니, 正(정)만 고집하지 않고 奇(기)의 요체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배수진은 병법을 좀 익혔다고 해서 내놓을 수 있는 전술이 결코 아니다. 수많은 요소를 두루 파악한 뒤에야 내놓을 수 있는 전술이다. 한신은 먼저 적의 수와 군세, 적장의 능력과 성격, 지형과 지세, 적이 구사할 모든 전술 따위를 두루 파악하고 심사숙고한 뒤 자신의 군대 수준과 승리 가능성을 냉철하게 판단하였다.
가령 자신은 오합지졸을 거느리고 적의 주력 군대와 맞서야 하며, 적은 수적으로 우세할 뿐 아니라 성을 지키고 있고, 게다가 적에게도 뛰어난 전략가(이좌거)가 있으며, 정형으로 가는 길은 매우 좁아 수레 두 대가 나란히 갈 수 없다는 것 따위를 두루 헤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 형세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미리 전략을 짜고 전술을 마련했더라도 형세가 一變(일변)하면 과감하게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병법의 正則(정칙)만 고집해서는 끝내 패배를 맛볼 뿐이다.
이좌거의 계책을 쓰지 않은 성안군은 조괄이나 마속과 같은 인물이며, 대부분 유자가 가진 고지식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유자들을 正道(정도)만 고수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편견이고 오해다. 유가에서 강조하는 禮(예)도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알맞게 처신하는 것이지, 禮書(예서)에 쓰여 있는 대로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의 要諦(요체)는 '時中(시중)'에 있다. 때에 알맞게, 상황에 알맞게, 상대와 어우러지도록 행동하는 것이 바로 시중이다.
어쨌든 전쟁에서는 기발하고 기묘한 계책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이긴다. 마찬가지로 정치나 통치에서도 상황 변화를 잘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도나 정칙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奇(기)가 아무리 승리를 보장한다 해도 결국 正(정)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기와 정은 서로 북돋워 주어 마치 둥근 고리처럼 끝이 없다"(<29>)고 한 말도 그런 뜻을 담고 있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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