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34> 南橘北枳

bindol 2021. 6. 1. 05:08

- 남쪽 남(十-7)귤 귤(木-12)북쪽 북(匕-3)탱자나무 지(木-5)

 

왜 앞에서 장황하게 奇(기)에 대해 이야기했는가? 우리가 살면서 늘 겪는 괴로움이나 어려움은 대부분 이렇게 '기'를 써야 할 때 '기'를 쓰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는 문제의 범위나 성격이 대체로 정해져 있지만, 살면서 겪는 문제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지 않으며 어떤 문제일지도 거의 예측할 수 없다. 한마디로 우리 자신은 豫測不能(예측불능)이고, 문제는 豫測不可(예측불가)다.

'說苑(설원)'의 '奉使(봉사)'에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

제나라의 晏子(안자) 곧 晏嬰(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초나라 왕이 그 소식을 듣고는 좌우 신하들에게 말했다.

"안자는 현자라고 하는데, 이제 이 나라에 온다니 그를 한 번 골탕 먹이고 싶소. 어떻게 하면 되겠소?"

신하들이 대답했다.

"그가 오면 신들이 한 사람을 결박하여 왕의 앞을 지나가게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초나라 왕과 안자가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한 사람이 결박된 채 왕의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왕이 물었다.

"어떤 사람인가?"

"제나라 사람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가?"

"도둑질했습니다."

"제나라 사람은 본디 도둑질을 잘하는 모양이지?"

그러자 안자가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강남에 귤이 있다기에 제나라 임금이 사람을 시켜 구해서는 강북에 심었는데, 귤은 나지 않고 탱자만 열렸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땅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이제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살 때는 도둑질하지 않다가 초나라에 와서는 도둑질을 하고 있으니, 땅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초나라 왕이 말했다.

"그대를 골탕 먹이려다가 도리어 내가 당했소이다!"

여기서 나온 성어가 '南橘北枳(남귤북지)'다. 다른 나라의 사신을 일부러 골탕 먹이는 일은 외교적 관례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예의를 잃지 않고 대응해야 하는 것이 또한 사신의 임무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안영은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로써 차분하게 맞받아쳤다.

흔히 "귤이 淮水(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착하게 되기도 하고 나쁘게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작물이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특성을 비유로써 활용한 대답에 초나라 왕은 된통 혼이 났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