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 천(大-1)사람 인(人-0)느낄 감(心-9)응할 응(心-13)
수신이나 제가에서, 또 나아가 치국평천하에서 이 격물이 처음이 되고 긴요하다는 말은 인간의 사유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인 사물의 세계가 인간의 삶과 문명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근대 과학과 기술의 발달을 통해 잘 알려져 있으나, 근대 이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더구나 만물이나 모든 현상에는 영적인 어떤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여기거나 초월적 존재가 인간사를 주재한다고 여긴 고대에는 사물 자체를 이해하고 탐구해야 한다는 인식을 좀처럼 갖기가 어려웠다. 바로 그러한 때에 '격물'을 운운했으니, 그 의미는 결코 심상하지 않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동아시아인은 대체로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현상이 인간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여겼다. 이른바 '天人感應(천인감응)'이 그런 뜻을 담은 용어다. 중세 내내 역사서에서 일식이나 월식, 지진 따위를 중요하게 기술한 까닭도 그러한 현상이 인간사와 상호 영향 관계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하늘과 땅의 신령들이나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나라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蓍草(시초)나 거북으로 점을 친 일도 그 때문이었다. 陰陽(음양)에 바탕을 둔 易(역)이나 五行(오행)의 이론도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기원전 780년, 周(주)나라 幽王(유왕) 때 일이다. 도읍인 鎬京(호경) 근처 涇水(경수)·渭水(위수)·洛水(낙수) 세 강 근처에서 지진이 났다. 이 세 강은 모두 주 왕조의 본향인 岐山(기산)에서 발원한다. 그 지진을 두고 대부 伯陽父(백양보)가 이렇게 말했다.
"주나라가 망할 것이다. 무릇 천지의 기운은 질서를 잃지 않는 법이다. 만약 질서를 어긴다면, 백성이 혼란을 겪는다. 양기가 밑에 깔려 나올 수 없고 음기가 양기를 눌러서 솟아나지 못하게 하면 지진이 발생한다. 이제 세 강에서 지진이 발생한 것은 양기가 제 자리를 잃고 음기에 눌려 있기 때문이다. 양기가 제 자리를 잃고 음기가 그 자리에 있게 되면 강물의 근원은 반드시 막히고, 근원이 막히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기원전 771년, 서쪽 犬戎(견융)의 침입을 받아 유왕은 죽고 도읍을 동쪽 雒邑(낙읍)으로 옮겨야 했다.
마치 땅의 기운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해서 벌어진 일처럼 보였고, 또 그렇게 인식했기 때문에 '史記(사기)'에서나 '國語(국어)'에서도 이를 기록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왕의 죽음과 遷都(천도)는 순전히 군주 자신의 不德(부덕)과 그릇된 정치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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