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쓸 무(力-9)재물 재(貝-3)쓸 용(用-0)사람 자(老-5)
周(주) 왕조는 천자가 천하를 다스리면서 제후들에게 영토를 분봉하여 각기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封建制(봉건제)를 썼다.
제후들은 다시 경대부들에게 일정한 영지를 분봉하여 집안을 이루게 했다. 제후나 경대부는 분봉 받은 땅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백성까지 아울러 소유했다.
그렇지만 백성이 생산한 것까지 무한정 소유해서는 안 되고 알맞게 세금을 매겨서 거두어야 했다. 따라서 ‘長國家而務財用者’(장국가이무재용자) 곧 “나라나 집안의 어른이 되어서 재물을 모으고 쓰는 데 힘쓰는 자”라고 한 말은 자신의 영지 내에 거주하는 백성에게서 세금을 지나치게 거두어들여 백성의 생활을 곤궁하게 만드는 자라는 뜻이다.
가령 전국시대 제나라의 孟嘗君(맹상군)은 자신의 영지에 사는 백성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놀이를 했다. 식객으로 있던 풍훤을 보내 빚을 받아오라고 했는데, 풍훤이 소인이었다면 당연히 받아오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풍훤은 현명한 사람이어서 빚 문서를 모조리 태워버리고 백성의 빚을 모두 탕감해버렸다(<121>회). 그 덕분에 나중에 맹상군이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그곳 백성이 맹상군을 기꺼이 받아들여 재기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맹상군만 자신의 영지에 살던 백성에게 빚을 놓은 게 아니다. 큰 가문을 이루고 있던 다른 경대부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백성이 빚을 냈다는 것은 곧 자신들이 생산한 것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었다는 뜻이다. 어찌하여 곡식을 생산한 백성이 먹고살기 힘들었을까? 세금으로 거두어갔기 때문이다. 누가 거두어갔는가? 군주나 경대부가 보낸 소인배 관리들이 거두어갔다. 공자가 말했듯이 소인은 잇속에 밝은 자들이다. 군주나 경대부가 그런 자들을 가까이하고, 그런 자들을 써서 세금을 거두며, 그런 자들에게 나라나 집안을 다스리게 한다면, 그 나라는 위태로워지지 않을 수 없다.
商(상) 왕조를 무너뜨리고 주 왕조가 선 것은 대략 기원전 1045년이다. 그리고 기원전 771년에 申侯(신후)와 犬戎(견융)의 침입을 받아 幽王(유왕)이 죽임을 당했고, 이듬해 도읍을 동쪽 낙읍으로 옮겼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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