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가영 논설위원이 간다]“산업화ㆍ민주화 세력 ‘이념 정치’에 종지부…패러다임이 바뀌었다”[출처: 중앙일보]

bindol 2021. 6. 16. 04:42

이가영 기자

 

이가영 - 중앙일보 기자

 

news.joins.com

[대전=뉴시스]최동준 기자 = 취임후 첫 공식 행보에 나선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가 14일 오전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천안함46용사 묘역을 참배한 후 고 김경수 상사의 부인 윤미연씨를 위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6.14. photo@newsis.com

 

 2011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따라 당사에 발을 디딘 여드름 청년. 이후 그는 세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탈당과 복당 등 우여곡절의 정치 여정을 지나왔다. 4ㆍ7 재ㆍ보선에서 국민의힘 승리에 큰 공을 세운 그는 30대 중반에 대한민국 제 1야당의 대표에 오른다. ‘박근혜 키드’에서 ‘이준석 현상’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지켜보는 기성 정치인들과 전문가·학자들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이준석 현상이 일시적 신드롬을 넘어 대한민국 정치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준석 현상 바라보는 전문가 시각>
36세 당 대표 선출, 2030대 뿐 아니라
40~60대의 ‘이념 정치 거부’ 도 반영
세대ㆍ주류 세력 교체에 그치지 않아
어떤 내용 담느냐에 지속 여부 달려



 
“이념 중심의 정치에 종말 고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준석 대표의 부상을 ‘MZ세대의 반란’으로 설명한다. 특히 ‘이대남(20대 남성)’이 가진 불만과 불안을 승화해낸 이 대표에게 2030 남성들의 지지가 쏟아졌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30 남성들의 대통령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다 4ㆍ7 재ㆍ보선의 핵심 변수가 된 LH 사태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이 대표가 각종 정책에 대한 2030의 불만을 대변하고 나서면서 2030이 보수당을 쳐다보게 하는 마중물이 됐다. 4ㆍ7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은 2030 남성들로부터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지를 얻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 세대가 이 대표를 통해 정치세력화하고 힘을 발휘하려는 건 분명히 맞고 당연하다”며 “하지만 40~60대 중에서도 이 대표 같은 파격적 존재가 정치를 바꿔주길 바란 사람들이 상당히 많고, 이준석 현상에 이것들이 반영됐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특히 현재의 보수 정치권으로 대변되는 산업화 세력, 진보로 표현되는 민주화 세력의 ‘이념 정치’가 이제 더이상 국민들에게 먹혀들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단순한 세력의 교체가 아닌, 정치의 패러다임이 변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말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의 변화는 단순히 세대교체로만 설명할 수 없다. 2030 세대뿐 아니라 40~60대도 기존의 정치가 싹 바뀌길 바라는 욕구가 컸다. 그럴 때 이 대표와 같이 파격적 존재가 나타났다. 마치 비디오게임에 등장하는 히어로같이 말이다. 이 대표에 대한 지지와 '30대 0선 당 대표'의 등장은 결코 일부 세대가 힘을 합친 결과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변화이자 혁명적 변화다.”


-세대교체,주류 세력 교체가 아니면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과거 정치의 패러다임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정치였다. 이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했다. 지금까지는 보수 정치권으로 대표되는 산업화 세력과 진보가 대변하는 민주화세력이 경쟁하는 정치구도였고, 그 이념 자체가 모든 걸 집어삼키는 블랙홀 정치였다. 그런데 이명박ㆍ박근혜ㆍ문재인 정부를 지나면서 국민은 두 정치집단이 결코 공정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이익만 추구했다고 판단했고, 그 피해는 국민이 입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기반에서 이 대표가 탄생했다. 정치의 패러다임이 확 바뀐 거다. 이런 흐름을 읽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어렵다.”
  
박용진 의원 “올 것이 왔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와 국민의힘의 부상을 바라보는 속내가 가장 씁쓸한 이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586 세대 중 처음으로 메이저 정당의 대표가 됐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 의미가 평가절하되고 있다. 15일엔 이 대표를 향해 ‘여야정 상설협의체’로 손을 내밀었지만 관심은 좀체 송 대표로 옮겨가고 있지 않다.  


상대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준석 바람의 혜택을 받고 있다. 만 50세의 그는 현재 당내 주자 중 가장 젊은 후보다. 최근 몇몇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의원에 이어 3위로 뛰어올랐다. 


그는 이준석 현상에 대해 “올 것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준석의 등장은 세대교체 뿐 아니라 구태 정치의 청산을 의미한다”며 “이제 모든 식의 줄 세우기는 사라져야 할 때”라고 말헀다. 박 의원은 “아직도 민주당 내에 포럼 등등을 내세워 후보들에게 줄 세우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제대로 된 캠프 없이 제 1야당의 대표가 됐는데 우리 당은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당선을 바라보는 당내에 당혹감은 존재하지만 위기감은 없다. 지금이야말로 위기감을 제대로 느끼고 국민이 원하는 변화를 이뤄야 할 때 아닌가”라며 “4ㆍ7 재ㆍ보선과 이 대표의 당선에서 드러난 국민이 명령은 민주당에 '내로남불' 버리고 신뢰를 세우란 거다”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의 당선으로 정치권의 고질병인 ‘줄 세우기’가 과거의 유물이 될 것이란 분석은 학계에서도 나온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대표가 당선 일성으로 ‘빚지는 정치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지금껏 많은 소장파들도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대목”이라며 “이 대표의 당선은 우리 정치에서 네트워크의 문화를 과거로 돌리는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어떤 내용 담을지에 미래 달려” 
이 대표가 어떤 내용의 정치를 펼칠지에 ‘이준석 현상’의 미래가 달렸다는 데도 상당수 전문가들은 동의했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는 “이 대표의 부상은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담겼다는 것만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며 “이는 바람처럼 사라질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이런 트렌드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기성 정치인들이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다만 나이가 젊다고 생각이 젊은 건 아니다. 서구 정치권은 오랜 민주주의 정치사에서 수많은 위기와 정권 교체를 겪으며 나름의 생존 전략을 갖고 있다”며 “당장이야 젊은 이준석의 얼굴로 교체됐지만 국민의힘이나 다른 정당들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예측가능한 정책적 연속성을 보일 수 있는 역량을 갖추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대표가 얼마나 그 내용을 잘 채워나갈 지에 지금의 바람이 지속될 지가 달려있다”고 평가했다.


‘보수 브레인’으로 통하는 장경상 국가경영연구원 사무국장은 “(박 전 대통령) 탄핵 때부터 국민은 이미 정치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고민이 있었다. 기성세대는 ‘내가 알아왔던 게 맞나’라고, 젊은 세대는 ‘내가 배웠던 게 맞나’는 질문을 던졌지만 기존의 정치권은 이에 답하기는 커녕 제 잇속 챙기기에 바빴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준석이 나타나 그 기대를 안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 국장은 “이 대표가 지금 상황에서 이념이나 진영을 넘어서 그 소명을 느끼고 제대로 된 정치를 펼쳐야만 정치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가영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이가영 논설위원이 간다]“산업화ㆍ민주화 세력 ‘이념 정치’에 종지부…패러다임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