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권력자들은 정권 장악을 혁명으로 미화한다 [송재윤의 슬픈 중국]

bindol 2021. 7. 8. 06:28

권력자들은 정권 장악을 혁명으로 미화한다 [송재윤의 슬픈 중국]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14> ◇ “정권은 반대세력 진압하는 도구…집권하면 노동인민 획득”

혁명은 큰 유혹이다. 일시에 한 사회를 뒤바꿀 수 있다면 마다할 자 누구인가? 오로지 반혁명세력 밖에는 없다. 반혁명세력만 제거되면 “혁명”이 완성될 수 있나? 역사의 경험을 돌아보면, 대답은 “노!”다. 프랑스혁명은 자코뱅의 테러정치(1789-1794)를 몰고 왔다. 러시아혁명은 스탈린의 대숙청(1936-1938)으로 귀결됐다. 중국공산당 혁명은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1958-1962)을 초래했다.

특정 세력의 집권 그 자체를 “혁명”이라 이를 수 없다. 집권이 불가역적 사회체제의 변동으로 이어질 때에만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혁명이란 단어를 오용하고 남용한다. 특히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집권 그 자체를 혁명으로 미화한다. 집권이 곧 혁명으로 인정되는 순간, 그들은 통치의 전권(全權)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의 “정변”이 혁명으로 미화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

1966년 5월 18일 중국의 국방부 장관 린뱌오(林彪, 1907-1971)는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다음 발언을 한다.

“혁명의 근본문제는 바로 정권의 문제다. 정권을 얻으면 무산계급 노동인민은 일체를 획득한다. 정권을 잃으면 일체를 상실한다. 정권은 무엇인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압박하는 도구다. 정권은 [반대세력을] 진압하는 권력을 말한다.”

일찍이 1927년 3월 마오쩌둥은 "혁명은 한 계급이 봉기를 통해 다른 계급을 무너뜨리는 폭력 행위"라 규정한 바 있다. 마오쩌둥의 이 명언을 원용해서 린뱌오는 "정권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압박하는 도구"라 단언한다. 분명 그는 무산계급의 정권 획득 그 자체를 혁명의 완성이라 생각하고 있다. 혁명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 정책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다.

마오쩌둥의 총애를 받아 국방부 장관의 지위에 오른 린뱌오는 문혁 초기 중공정부의 2인자로 급부상했다. 그런 린뱌오가 바로 이 시점에서 “혁명은 곧 정권의 탈취”라 규정한 구체적인 까닭이 있다. 바로 이틀 전 중공중앙 확대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문화대혁명의 개시를 알리는 이른바 “5.16통지”가 채택됐기 때문이다.

◇ 만장일치 통과 ‘5.16통지’, 무산계급 문화혁명 포고

만장일치의 거수로 통과된 이 “5.16통지”는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의 포고문이었다. 3개월 전 베이징 시장 펑전은 마오쩌둥에 이른바 “2월 제강”을 제출했다. 중공중앙의 승인을 얻은 “2월 제강”을 통해 펑전은 역사학자 우한의 역사극 “해서파관”을 옹호하면서 “진실 앞에서 만민이 평등하다!”는 도발적인 테제를 주장한다.

5.16통지는 마오쩌둥의 수족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비밀정찰의 귀재 캉성(康生, 1898-1975), 중공의 이론가로서 “붓대”라 불리던 마오의 유령작가 천보다(陳伯達, 1904-1989), 이후 4인방으로 맹활약하는 인물 등이 참여했다. 그들은 “2월 제강”의 10대 죄악을 지적하면서 펑전 등을 반혁명분자로 몰아간다.

<1966년 5월 16일 배포된 중공중앙의 2급 비밀 문서 중발 267. 이후 “5.16통지”로 알려졌다. 이 문서는 1967년 5월 17일 인민일보에 게재된다.>

마오쩌둥의 의도를 간파한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는 1966년 5월 21일 총리 정치국 회의에 “문화대혁명은 지방이 아니라 중앙, 국제정세가 아니라 국내정세, 당외가 아니라 당내, 하급관료가 아니라 고급관료에 집중된다!”고 발언한다.

상황이 급변하자 “2월 제강”에 동조한 인사들은 서둘러 발뺌을 한다. “2월 제강” 자체가 反사회주의, 反 마오쩌둥, 反공산당의 증거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중공중앙에 “똬리 튼” 네 명의 핵심 인물이 가장 먼저 문혁의 형틀에 올랐다. 베이징 시장 펑전, 중앙군사위 연합참모부장 뤄루이칭(羅瑞卿, 1906-1978), 중앙선전부의 핵심인물 루딩이(陸定一, 1906-1996), 중난하이(中南海)의 실무를 관장하는 중앙 판공청(辦公廳) 주임 양상쿤(楊尙昆, 1907-1998)이었다.

◇ “반혁명 꾀하는 펑-뤄-루-양 4대가족을 몰아내라”

1966년 5월 18일 린뱌오의 연설문에 따르면, 펑전은 중앙서기처를 쥐락펴락했다. 뤄뢰이칭은 군권을 장악했다. 루딩이는 문화·사상 전선의 지휘관이었고, 양상쿤은 국가의 기밀, 정보 및 정부의 연락망을 관장하던 인물이었다. 린뱌오는 “정변을 일으키기 위해선 신문, 방송, 문학, 영화, 출판 등 선전매체와 군대를 동시에 장악해야” 하는데, 바로 이 네 명이 정부를 장악하고 반혁명의 정변을 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오쩌둥은 이미 1965년 11월 중순 베이징을 떠날 때 양산쿤을 파면하고 대신 심복 왕동싱(汪東興, 1916-2015)을 앉힌 바 있다. 이어서 린뱌오는 그의 부인 예췬(葉群, 1917-1971)을 사주해 뤄루이칭을 보좌하던 중앙군사위 부비서관 샤오샹롱(肖向榮, 1910-1976)을 공격한다. 마오쩌둥은 펑전을 잡기 위해 우한을 공격했고, 린야오는 뤄루이칭을 잡기 위해 샤오샹롱을 먼저 잡았다.

대부분 눈치조차 챌 수 없었지만, 그러한 조치들이 야오원위안의 "해서파관" 비판과 정교하게 맞물리고 있었다. 반년 전부터 마오는 겉으로는 우한의 "해서파관"을 비판하면서 물밑에선 군부의 거물을 몰아내는 투 트랙의 작전을 짜고 있었다. 노회한 영도자가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짜낸 정변(政變)의 모략이었다. 1966년 6월부터 "펑-뤄-루-양 4대가족"을 향한 지독한 인민재판이 전개되었다. 중난하이에서는 중공중앙의 핵심 인사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이들을 규탄하는 첫번 째 집회가 열렸다. 곧 이어 베이징 전 지역에서 집회가 이어졌다.

<1966년 홍위병의 집회에 끌려 나와 비투당하는 펑전, 루딩이, 뤄루이칭, 양상쿤의 모습

◇ 홍위병들, 욕설 퍼붓고 침 뱉으며 '제트기' 고문 뤄루이칭은 결국 건물 밖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쳐 불구가 되고 만다. 그가 병원에 있는 동안, 부인이 대신 집회에 불려나가 "비투"(비판투쟁)를 당해야만 했다. 연말부턴 홍위병들은 뤄루이칭을 들것에 싣고 가서 "비투"의 단상에 올렸다. 비투는 한 개인의 인격을 산산이 짓밟는 잔혹한 집단린치였다. 홍위병들은 끌려온 "반혁명분자"들의 머리에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씌우고 욕설을 퍼붓고 침을 뱉었다. 단상에 올라온 피해자의 팔을 양옆에서 잡아 비틀고 머리채를 잡아 누르는 이른바 "제트기" 자세의 고문이 행해졌다. 연좌제는 일상이었다. 루딩이 역시 부인과 함께 홍위병 집회에서 지속적으로 비투당했다. 그의 아들뿐만 아니라 세 명의 처제들까지도 각각 6-9년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으며, 그의 장모는 감옥서 병사했다.

<부러진 다리로 홍위병에 들려 비투의 단상에 오르는 뤄루이칭의 모습

베이징 시장 펑전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거의 날마다 집회에 불려나가 비판, 모욕, 조롱, 고문당하는 형벌을 견뎌야만 했다. 물론 문혁의 칼바람은 펑전 한 명에 국한되지 않았다. 베이징 시위원회의 부시장 10명이 그해 6월 모두 파면되었다. 그를 보좌하던 81명의 관원들은 곧 쥐도 새도 모르게 구속되었다. 펑전의 사람들이 모두 축출된 후, 지방에서 새로 발탁된 당성 좋은 관원들이 베이징 시위원회의 요직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혁명은 결국 정변일 뿐이었다.

<문혁 당시 홍위병들이 행했던 고문 “제트기 타기”의 한 장면

정변 속에서 자행된 가혹행위는 곧 수많은 사람들의 자살로 이어졌다. “5.16통지”가 반포된 다음 날, 역사학자 우한을 변호하던 언론인 덩퉈(鄧拓, 1911-1966)가 자살한다. 5월 23일엔, 장시간 마오쩌둥의 총애를 받으며 정치비서로 18년간 활약했던 톈자잉(田家英, 1922-1966)이 자살한다. 6월 25일 국제 업무를 담당하던 베이징시의 관원이 “외국과의 불법 접촉”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시달리다 자살한다. 7월 10일 베이징시위원회 선전부장 리치(李琪, 1914-1966)가 자살한다. 7월 23일엔 2월 제강의 초안을 작성한 서기 한 명이 또 스스로 목을 맨다. 끝도 없이 자살의 행렬이 이어졌다. 문혁의 폭풍이 채 일기도 전이었다. ※ 필자 송재윤(51)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최근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까치)를 출간했다. 중국 최현대사를 다룬 3부작 “슬픈 중국” 시리즈의 제 1권이다. 이번에 연재하는 ‘문화혁명 이야기’는 2권에 해당한다. 송 교수는 학술 서적 외에 국적과 개인의 정체성을 다룬 영문소설 “Yoshiko’s Flags” (Quattro Books, 2018)의 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