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아프간서 ‘점령군’이 떠난 후
kim-jinmyung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요즘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브리핑의 중심엔 아프가니스탄이 있다. 9월 11일 완료할 예정이었던 미군의 아프간 철수가 계획보다 빨리 진행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탈레반이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탈레반 반군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서부 바드기스주의 주도 칼라아이나 주택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탈레반 반군은 이날 미군의 최종 철수가 이뤄진 이후 주도를 겨냥한 최초의 대규모 공세를 개시했다./AFP 연합뉴스
20년 전인 지난 2001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아프간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프간 사람들은 공개 처형과 가혹 행위를 일삼는 탈레반의 공포정치 하에 살았다. 여성들은 기본적 교육과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집 안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비롯한 아프간 전역을 다시 차지하게 되면 보통 아프간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그 무거운 현실에 대한 질문이 브리핑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2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 기자는 “아프간 정부가 함락된다거나, 카불에 피바다가 펼쳐진다거나, 미국이 다시 군을 보내려고 생각할 만한 어떤 상황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젠 사키 대변인은 “(철군 결정 전에 이뤄진) 리뷰가 최선의 시나리오만 상정해서 사탕발림을 한 것은 아니었다”면서도 “20년 간의 아프간 전쟁을 끝내서 (다른) 세계적 위협을 다룰 수 있게 되고 미군을 보호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그(바이든 대통령)의 우선 고려사항”이라고 답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8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위해 기자들과 만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아프간인들을 위해 “계속 인도적 원조를 제공할 것”이라면서도 “또 한 세대의 미국인들을 아프간 전쟁 속으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고히 말했다. 그는 “우리는 국가 건설(nation-build)을 위해 아프간에 들어갔던 것이 아니다”라면서 “아프간의 미래와 어떻게 국가를 운영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아프간 사람들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의 국가 건설에 관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최근 우리 정치권에서 벌어진 ‘점령군’ 논쟁이 저절로 떠올랐다. 대한민국은 ‘친일 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으로 깨끗하게 출발하지 못했던 나라’란 주장 말이다. 만약 6·25 전쟁으로 이어졌던 당시의 국제 정세 속에서 미군이 완전히 철수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번영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었을까.
공교롭게도 ‘점령군(occupying force)’이란 말은 탈레반도 자주 쓰는 단어다. 미군과 나토(NATO)군이 9월 11일까지 철군을 마치지 않으면 ‘점령군’으로 취급해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협박한다. 이제 그 점령군이 떠나고 이슬람의 ‘순수(purity)’를 수호하겠다는 탈레반이 다가오는데 왜 아프간 사람들은 두려워하는가.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물상] ‘고점(高點) 호소인’ (0) | 2021.07.12 |
---|---|
[조용헌 살롱] [1305] 벨기에 대사 부인 (0) | 2021.07.12 |
[만물상] 경복궁 수세식 화장실 (0) | 2021.07.10 |
[특별기고] 미·소 해방군·점령군 논쟁 어떻게 볼까[출처: 중앙일보] (0) | 2021.07.09 |
[김호동의 실크로드에 길을 묻다] ‘숏다리’ 몽골말, 어떻게 ‘롱다리’ 서역말 꺾었나[출처: 중앙일보] (0) | 2021.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