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28] 총리와 총재
중앙은행 총재와 총리를 모두 지낸 인물들. 총리 재임 뒤 중앙은행 총재로 옮겼다 물러난 아이슬란드 다비드 오드손 총리,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출신으로 이탈리아 총리가 된 마리오 드라기, 일본은행 총재 출신의 다카하시 고레키요 전 총리. /위키미디어, 로이터AP연합뉴스
독일 메르켈 총리가 16년 만에 물러난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12년 만에 물러나면서도 권력이 아쉬운 듯 권토중래를 벼른다. 아이슬란드의 오드손 총리는 13년 만에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중앙은행 총재로 자리를 옮겨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식견 부족이 드러나서 여당이 중앙은행법을 고쳐 그를 해임했다.
마리오 드라기는 그 반대다. 가만히 있는데 총리로 추대되었다. 코로나19 위기로 이탈리아 경제가 크게 휘청거리자 국민이 그를 정치판으로 부른 것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서 보여준 과단성과 돌파력을 기대한다.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清)도 일본은행 총재를 거쳐 총리가 되었다. 그 역시 아주 대범했다. 대공황 돌파를 위해 금본위 제도를 중단한 뒤 일본은행에 국채를 인수토록 하고 그 돈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했다. 오늘날의 양적 완화다. 그러나 군사비 지출은 최대한 억제했다. 거기에 불만을 품은 젊은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5·16의 모티브였던 2·26 사건(1936년)이다.
총리와 총재의 공통점은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조율한다는 점이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 죽으면, 여러 신하가 모여 생전의 기록물들을 모아 실록을 편찬했다. 그 총책임자가 총재관(總裁官)이었다. 판단력, 의견 조정 능력, 문장력이 두루 요구되는 임시직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정당 대표를 총재라고 불렀다.
2011년 이 무렵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민주화 시대에 총재라는 명칭은 걸맞지 않으니 바꾸라”고 지시했다. 그 때문에 산업은행 대표의 명칭이 총재에서 회장으로 바뀌었지만, 이 대통령이 틀렸다. 총재야말로 굉장히 민주적인 말이다. 오늘날 정치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자기를 낮추고 여러 의견을 조율하는 ‘총재질’이다.
드라기 총리는 “아내가 훨씬 똑똑하다”며 몸을 낮춘다. 김부겸 총리는 한국은행 출신의 아내에게 항상 감사한다. 부디 집 밖에서도 항상 그러하시길. 좋은 총리는 좋은 총재질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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