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29] 한국 금융과 영국 금융의 차이
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지인 시티오브런던에 위치한 영란은행. /로이터 연합뉴스
우주의 가스와 먼지가 뭉쳐 별이 되고, 별은 수소를 태워 빛을 낸다. 그것이 끝나면 적색거성으로 부풀어 올랐다가 백색왜성이 되어 사라진다. 별의 일생에서 별이 가장 클 때는 내리막길로 접어들기 직전이다.
조직도 비슷하다. 1997년 말 한국은행에는 23부서가 있었고, 직원은 4000명이 넘었다. 그러나 이듬해 9부서가 폐쇄되고, 직원도 20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은행감독원 조직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분리 조짐은 그 전부터 있었다. 영동개발진흥이라는 회사가 조흥은행 간부들과 짜고 금융 사기를 저지른 직후다. 1983년 봄 그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는 대뜸 은행감독원의 ‘독립’을 별렀다. 하지만 시중은행 직원의 비리로 중앙은행 조직을 손보는 것은 터무니없었다.
결국 인사와 예산 면에서 은행감독원장이 한은 총재에게서 독립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후 정부 출신 은행감독원장들은 조직을 키웠다. 먼 훗날의 분리를 위한 ‘몸집 불리기’였다. 한 지붕 두 가족인 한은은 적색거성이 되어 갔다.
영동개발진흥 사건은 1866년 영국의 금융 공황과 구조가 비슷하다. 회사가 발행한 어음을 은행이 수수료를 받고 지급 보증하면, 회사가 그 어음을 시장에서 팔아 현금을 마련했다. 영국은 작은 은행의 지급 보증 규모가 너무 커서 파산했지만, 한국은 지점장의 지급 보증 서류 위조가 발각되어 파산을 면했다.
1866년 금융 공황은 영국 금융 시스템을 크게 바꿨다. 작은 은행의 파산이 금융 공황으로 쉽게 번지는 것을 막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최종 대부자'라는 개념에 이르렀다. 그리고 ‘최종 대부자'인 영란은행에 은행 감독 기능을 부여했다. 한국은 정반대다. 시중은행 간부의 사기를 감독 실패라고 탓하고 정부가 감독 기능을 가지려고 했다.
1983년 오늘 조선일보 1면은 ‘은행감독원 독립 백지화’가 장식했다. 그때 정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외환 위기 때 결국 목표를 이뤘고, 한은은 백색왜성으로 수축했다. 그 후 감독 실패는 따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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